행여 북한의 명승지에 가시거든....

북한의 명승지에 가면 대체로 빨간 원 안의 세 친구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은 이게 과연 무엇이며, 어떤 글자가 새겨져 있을까가 궁금해 해봅니다. 좌측부터 안내판, 안내도 그리고 표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특히 맨왼쪽 오각형에 집중해 봅니다.

헌책방마다 반드시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1997년 펴낸 "북한의 문화유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출판사가 동아일보사인데다, 종이질과 화질과 해설이 의외로 좋아 많이 팔렸나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발간 시기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예견된 베스트셀러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는  1997년 9월 중앙일보사와 함께 15일간 북한을 다녀오면서 나온 답사기를 기본으로 한거죠. 동아일보가 이를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1) 표석

책에는 "국보 제 1호이 경우, 그동안 알고 있던 평양 대동문이 아니라 평양성으로 바뀌었으며"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이야기조차 1997년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북한의 문화유산은 이렇게 화강암을 사각으로 깍아 전면에 대체로 빨간 글씨로  "국보유적 제 1호  평양성(平壤城)"이나, "지정고적....."라고 음각되어 있는 푯대가 서 있습니다.

개성의 오관산에 있는 동3층탑입니다. 이 탑에 대한 정통적인 설명, 이를테면 "이 탑은 고려 초기의 탑이며...." 유홍준교수에게 맡기고요.

여기도 빨간글씨체로 표석이 서있는데 너무 가까운 것 같습니다.  탐승객이 좀 더 뒤쪽에 서야 탑과 탑너머 오관산의 산줄기가 조화로울 듯 합니다.

개성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화강암 지질인 듯 한데, 대체로 암괴의 크기가 북한산처럼 대형이지 않고 관악산처럼 더 쪼개지고 마모되어 있다는 게 아쉽습니다.

2) 푯말 또는 안내도

강계읍성의 망미정이라는 남장대(장군의 지휘소)의 안내도 옆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재질이 화강암이고 특히 앞쪽을 잘 다듬어서 빨간 글씨로 새겨넣은 걸 알 수 있습니다.

해설내용은 건조하게 유적의 유래와 특징을 설명하는 것도 있고, "위대한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다..."로 한 것도 있습니다.

이제 3종세트 중 마지막으로 안내판을 보겠습니다.

평북 태천군 상단리에 있는 고려사찰 양화사입니다. 2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문화유적 사진 중에 이렇게 또릿하게 보여주는 게 하나있어 다행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의사항이군요. 어떤 게 적혀있는지 궁금해지는데 아쉽습니다. 스캐너가 더 좋으면 읽을 수 있을까요.

다만 3은 "모든 구역안에서 꽃과 나무를 꺽지 말아야 한다"라는 건 짐작해 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안내판이 일제때 널리 퍼진 일제식이라는 겁니다.

토쿠카와 이에아쓰가 정권을 잡는 세키노하라의 전투를 담은 2017작 '세키노하라'의 한 장면입니다. 보시다시피 1500년 경에도 똑같은 방식의 안내판을 썼습니다.

                       * 일제 시기 금강산 비로봉의 안내판에 대해서는 --> 여기를

아마 이 안내판이 왜색이라는 걸 몰라서일거라 생각합니다. 

(*조선때에 양반계급이 백성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판을 세워 뭐라도 알렸을 족속일거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는 걸 상상해보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죠.)

북한은 언어에 있어서도 한자식과 일제식을 극복하고 가능한한 우리말로 순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서 모르면 못하는거죠.

이를테면 북한의 최고 엘리트였을 태영호 공사는 신문기고글에서

"상고머리가 일제 잔재라고도 하지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7,80년대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상고머리가 무언지 잘 알죠. 하지만 한자어 상(上)과 일본어로 5인 고(ご)와 순우리말 머리의 합성어라는 건 몰랐기 쉽습니다. 옆머리는 짧게 윗머리는 5cm로 자른 머리라는 뜻이죠.

상고머리의 고가 일본어가 아니라 한자어 고(高)라고 인식되어 북한에서도 살아 남은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 사라진 까닭은 그 단어가 왜색이라서가 아니라, 촌스럽게 여겨져서일 겁니다.

자장면이니 짜장면이니 의 예를 보듯, 언어는 강제로 해서는 쉽게 될 일이 아닙니다. 대중들에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죠.

이 책은 1997년이니 그로부터 다시 20여년 세월이 흘렀네요. 북한의 왜색 안내판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행여 북한의 명승지에 가시려거든,

이렇게 멋진 앵글에 대상을 담으려만 마시고 구석구석 '손길'을 담아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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