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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에바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엄마가 되었다. 아들 케빈의 출산으로 그녀의 자유로운 삶은 사라지고 감당할 수 없는 육아로 버거웠다. 그녀는 솔직히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힘들었다.
에바는 "너 없는 삶이 더 행복했어."라며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드러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케빈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에바를 교묘하게 괴롭혀왔다. 괴롭히면서 그녀의 반응을 계속 살펴왔다.
조소 가득한 얼굴로 엄마와 아빠에게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며 에바에게 고통을 주었다.
케빈이 죄도 없는 수많은 학생을 죽인 건 에바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안겨주기 위함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와 여동생까지 죽인 걸 보고 케빈이 에바를 향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결핍과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빈은 지나칠 정도로 에바에게 집착했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은 에바에게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케빈 나름의 엇나간 방식이었다.
자신을 들여다 봐주지 않는 엄마, 자신에게 사랑을 확인시켜주지 않는 엄마, 끝내 자신을 감당하지 않고 이혼으로 자신을 떠나려는 엄마에 대한 분노였다.
케빈을 사이코패스라고 치부해버리면 이 영화는 복잡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니다. 그래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에바와 케빈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갔지만, 케빈이 생각하는 아빠의 존재가 계속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부모가 이혼한다는 말을 듣고 그 끔찍한 살인을 하고 아빠까지 죽인 케빈의 진짜 심리가 궁금했다. 아빠가 없어져야 엄마랑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이 영화에서 케빈에게 아빠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육아로 피폐해지는 여자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자식이 아니라 가깝게는 남편이고 더 나아가 사회이다.
감독은 한 가정 안에서 육아를 오직 엄마에게만 감당케 하는 사회적 틀을 아빠라는 존재로 대입 시켜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차갑고 매서워 보이지만 하나의 뜨거운 감성 코드를 가지고 있다.
에바와 케빈은 서로를 품고는 싶은데 서로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감정에 갇혀 지냈다. 마음은 보여주지 않은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이상 열리지 않는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진짜 서로에게 원하는 건 가까워지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서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깊이 고여있는데 그걸 서로 교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서로를 부족하게 만드는 정도를 지나 나쁜 엄마, 나쁜 아들로 몰아넣었다. 서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 끝내 자기 자신마저 통제하지 못하면서 비극을 초래하게 됐다. 스릴러가 되었다.
영화 속 케빈의 의도가, 케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아서 그런가, 자꾸 묻고 파고 궁금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성찰과 엄마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은 거저 자라나는 풀이 아니다. 자식도 부모도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유기체이다.
엄마라는 사람도 엄마로서 만들어지고 커가는 존재이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가 같이 성장통을 겪으며 엄마는 엄마로, 자식은 자식으로의 자리가 견고해지는 것이다.
여자가 육아로 감당해야 할 몫에 대해 옳은 무게인가를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육아를 짊어진 여자에 대한 사회나 남자가 얼마나 관여하여 나누어 짊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저 엄마란, 이래야 한다는 뼈 없는 살만 갖다 붙이고 의무에다 사랑을 덧대어 양심이나 도덕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는지, 마치 운명처럼 자리를 받아들이게 하지는 않았는지를.
분배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육아는 자식뿐 아니라 한 여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상실감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참아내고만 있는 엄마의 자리는 아닌지, 부모와 자식으로서 얼마나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는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각자의 관점에서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간혹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에바를 비난하는 글도 많았다.
엄마라는 자리는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엄마라는 자리는 마땅히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당연한 건 없다.
세상의 어떤 희생도 당연한 건 없다. 책임과 의무가 가미되어 있기에 끌고 가는 것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자는 없다.
엄마로 준비되어 있고, 준비되어 있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로 살아 본 자와 엄마로 살아보지 못한 자의 생각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엄마의 희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건 요구하는 자의 이기심에서 나온 말이다.
육아에서 벗어났던 아빠와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에바 사이에서 케빈이 아빠를 죽인 건 왜일까? 왜 아빠를 죽였을까?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아이와 교감하고 소통하지 못한 것은 엄마인 에바만이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같이 엇나가면서 부딪히기라도 했지만, 아빠는 항상 그 안에 들어있지 않았다. 알면서도 방관자처럼.
엄마로서 자식에게 100% 사랑을 채워줄 수는 없다.
자식이 부모를 100% 만족하게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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