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성냥갑 이야기...강릉에 폭포라니?

일제 강원도 강릉의 한 요리집에서 만든 성냥갑으로부터 설악산을 추출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이 시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설악산에 관한 희유(稀有)한 자료가 될 거라 봅니다.

기모노를 입고 난간을 잡고 서서 저멀리 아득한 산과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별볼일 없는 이 성냥갑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1)여자가 입은 기모노의 무늬는 무엇일까?

2) 저멀리 하늘에서 또는 깊은 산에서 비류직하 삼천척하는 폭포는 상상계일까? 실재계일까?

먼저 팩트체크를 해볼까요. 회석요리(연회석 요리), 복내가(福乃家 후쿠노야), 전화 27번, 강릉 욱정(旭町). 검색해보니, 욱정은 일본식 지명으로 아사히마치 또는 아사히죠로 읽습니다.

난간에 손을 살포시 얹어 놓고 있는 이 기모노 여성의 무늬는 별일까요 단풍잎일까요?

그 답은 단풍잎이기 쉽습니다.

검색을 해보아도 여성의 기모노에 별을 장식한 건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메이지 시대로부터 쇼와시대의 기모노를 그린 그림첩을 보면 단풍잎은 의외로 많습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폭포를 봅시다. 아득히 먼 산 사이로 아무 근심도, 회한도 없이 떨어집니다. 이 폭포는 상상계일까요?

영화 '고양이 사무라이'의 한 장면인데 두폭의 병풍 모두 폭포를 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메이지 시대의 다양한 영화에 등장하는 병풍에 폭포가 등장하는 걸 보시려면

폭포를 좋아하는 건 일본인들의 오래된 습속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병풍처럼 상상일 수 있겠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강릉(江陵)이라는 지명입니다. 시절인연이 좋아- 구글이 없었더라면??? - 검색해보니, 강릉은 우리나라 강릉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일본에서는 지명으로 그리 사용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강릉에 과연 폭포가 있냐는거죠. 분명히 갸웃거리게 될텐데요. 강릉에는 폭포가 없습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일제 때는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그건 바로.....

설악산의 대승폭포입니다. 한계령 너머 장수대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맞닥뜨리는 조선 최고의 위용.

대승폭포는 일찍부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폭포로 꼽혔습니다. 보시다시피 성냥갑에서처럼 '아득한' 저멀리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기세도 거의 같습니다.

문제는 과연 인제의 대승폭포를 강릉의 한 식당에서 차용할 수 있느냐라는 건데요.

당시 설악산 주위는 모조리 산간오지였습니다. 속초는 면단위도 채 되지 않은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했고요. 춘천은 어떻게 하면 경춘선 따라 서울과 가까이 하려 했을 터, 강릉의 먼 뒷산이라 해도 좋았을 겁니다.

1970년대에도 강릉과 설악은 팩키지로 코스였다는 걸 염두에 두면, 강릉서 바닷가 따라 드라이버를 가다가 오색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오색은 일제 때에도 온천과 약수로 나름 유명세가 있어 여관 등이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대승폭포는 이렇게 오색온천과 함께 해서 코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수대에서 직진을 하면 일명 한계령이라는 오색령을 너머 약수로유명한 오색동이 있습니다만 시일의 여유가 없으므로 오색약수를 마시지 못함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습니다" 라고 노산 이은상은 1933년 '설악행각'에서 당시 사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설악에서는 토왕폭, 비룡폭, 오련폭포 등 외설악의 폭포들이 먼저 꼽히지만, 그시절 외설악은 접근불가지역이었죠. 따라서 대승폭포가 성냥갑에 등장하는 것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하는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승폭포,

당당하고 호탕하고 거칠 것 없어 우리네 타는 번뇌를 씻어주고 가슴엔 영탄으로 가득채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모노에서 눈을 떼어, 저멀리 아득한 산과 비류직하하는 폭포를 관심갖고 천천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상 일제시대때 강릉의 한 식당 성냥갑에서 그시절 설악의 희유(稀有)한 흔적을 좇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