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말로 기억됩니다. 고등학교 후배와 저는 프로야구 팀 LG Twins를 좋아해서
토요일 잠실야구장에서 LG Twins경기가 있으면 자주 보러 갔습니다.
승용차를 끌고 잠실야구장으로 향하는 기분은 멋진 리조트를 가는 것처럼
설레였고 오늘의 야구결과가 한껏 궁금해지기도 했죠.

말로는 야구를 보러 가는 거였지만 사실은 애인도 없는 선후배가 탁트인 야구장가서
술한잔 하면서 멋진 치어리더들의 응원을 보러 가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잠실야구장이 좌석이 색깔로 모두 구분되어 있고 내야석도 위치에 따라
색깔과 입장료가 틀리지만 예전에는 내외야 구분밖에 없어 일찍 가면 좋은 위치에
앉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이 목적인 만큼 저와 후배는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입장하여 응원단석에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그때부터 음주를 시작합니다. 차를 가지고 왔기에
빨리 먹고 빨리 깨야 운전을 할 수 있어서 대낮부터 들기키게 된 거였죠.

그 당시는 맥주를 구장에서 팔지 않았던 때라 너무 일찍 들어가 마셔대면
경기시작과 동시에 술은 다 떨어지고 입맛만 쩝쩝 다시는 신세가 되죠.
그래도 운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음주는 안되기에 경기에 집중합니다.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응원단쪽 좌석은 분위기가 익사이팅합니다.
경기막판으로 가면 슬슬 술에 취한 분들의 곱지 않은 추태가 시작되죠.
강제로 응원단석에 올라 가 춤을 추는 분들부터 시작해 상대방을 응원하는
관중과 험담도 오갑니다. 이것도 하나의 운동장 문화이긴 했지만 가족들과
같이 온 관중들에게는 꼴불견이죠.

그때 당시 치어리더도 그렇지만 남성 응원단장이 왜 그렇게 멋져 보이던지
많이 부러웠습니다. 많은 관중을 자기의 행동과 말로 일사분란하게 응원할 수
있게 통솔하는 모습에서 카리스마를 느꼈던 거죠.

그렇게 야구가 끝나면 후배와 저는 다시 집으로 귀가해 차세워 놓고 포장마차로
가서 그날의 경기를 복기합니다. 말이 복기지 누가 잘했네 못했네 뭐 이정도로
주말 야구경기의 분석을 하죠. 지금 그 후배는 미국에서 옷가게를 한다고 들었는데
본지 참 오래됐네요. 한국에 오면 예전 기억 되살려 꼭 같이 잠실야구장으로 가야겠습니다.

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