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하던 해 여름, 야구를 좋아하던 친구가 경기 관람을 가자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후배 하나랑 친구랑 해서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갔는데 전날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가 있어서 더블헤더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저는 야구 경기 관람이 처음이었지만 친구는 제가 전역하기 전에 몇 번 보러 갔었던 가 봅니다. 야구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 저한테도 권유를 하게 되었고 저도 평소에 야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했던 터라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홈경기가 있던 날 야구를 좋아하는 후배 하나랑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래 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처음 들어가 본 경기장은 생각보다 좁았던 것 같고 잘만하면 나도 홈런을 칠 수 있을 것 같은 가당치도(?) 않은 호기로운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장 매표만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잡기위해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덕분에 선수들이 캐치볼을 하며 몸을 푸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고,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을 직접 보는 호강도 해 봤습니다.

카메라에 잡힌 선수들의 모습은 배도 조금 나온 것 같고, 덩치가 크다거나 조금 뚱뚱(?)해 보이는 모습도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떡 벌어진 어깨에 역삼각형의 잘 빠지고 균형이 잡힌 몸매들이라 조금 의외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좌익수 근처의 외야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야구를 보다보니 타자가 친 공이 빨랫줄처럼 쭉 뻗어나가는 모습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수비수들의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내야 쪽 응원석에서 치어리더들과 응원단장(?)의 지휘아래 떼창을 불러가며 응원 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친구가 야구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응원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고 설명을 해 줍니다.

그렇게 첫 번째 경기가 끝나고 잠시 재정비를 하는 시간에 셋이서 컵라면을 먹어가며 다음 게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야구장에서 먹는 컵라면은 왠지 더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더블헤드의 두 번째 경기가 시작이 되고 다시 경기를 보고 있는데 2~3회를 넘어가자 엉덩이가 슬슬 배겨오면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 의자에다가 앞뒤 간격이 좁아 다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다보니 엉덩이도 아파오고, 다리도 저린 것 같고, 몸도 저절로 꼬여 갔지만 친구와 후배는 야구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는지 불편한 기색 없이 잘도 보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잠시 일어나서 몸을 풀고는 다시 앉아서 보고는 했습니다.

이게 5회를 넘어가니 더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야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친구와 후배에게 슬며시 가자는 눈치를 줘 봤지만 야구를 보는 재미에 빠져있는지 돌아오는 대답이 영 건성입니다. 열심히 보고 있는 친구에게 자꾸 가자고 재촉하기가 미안해서 억지로 참고는 경기를 보고 있는데 관중들 중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7회쯤 되자 홈팀이 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경기에 상관없이 파도타기도 하고 떼창도 부르면서 관중들끼리 응원 아닌 응원하는 재미와 또 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잠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친구와 후배에게 가자고 재촉을 했더랬습니다만 여전히 친구와 후배는 조금만 더 보자면서 기다리랍니다. 관중석에서는 더 난리가 났습니다. 여기저기서 춤판이 벌어지고 한 번 지나갔던 파도타기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돌아오더니 몇 바퀴를 계속 돕니다. 니편 내편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과 술집(?)을 구경했습니다. 그 날은 다행히 물병이나 컵라면 용기가 경기장 안으로 날아가는 불미스런 사고(?)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8회를 넘어가면서 이도 시들해졌는지 -점수차이가 많이 나게 지고 있기도 했지만-관중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9회가 되면서 거의 꽉 찼던 관중들이 거의 절반이나 빠져나가자 친구와 후배도 그제야 일어섰습니다.

그 날 이후 야구 경기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의가 몇 번 더 있었지만 엉덩이의 통증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눈치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야구장하면 엉덩이에 지긋(?)한 고통을 안겨주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가 먼저 떠오릅니다.

억수로빠른 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