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조선인들은 양정고보, 휘문고보, 평양고보 등등의 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들은 수학여행을 일본 또는 만주로 갔는데,
그곳에서 한결같이 아래와 같은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된다.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가면 우선 온통 녹색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게 된다. 조선의 헐벗어 황토빛인 산하를 떠올리며 비애감을 느낀다. 이윽고 교토의 화려한 문화유산과 도쿄의 으리으리한 빌딩을 보며 격차감, 비하감에 시달린다는 식으로 말이다.

수학여행 코스를 이렇게 짠 이유는 대체로 황국신민을 만드려는 총독부의 '음모'라고 읽은 것 같다. 그거, 정말 사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당시 조선인 고보생들이 수학여행을 일본과 만주에 '간절히' 가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재조선 일본인 학생들이 다닌 학교는 경성중학, 용산중학, 평양중학 등등 중학교라 불렸다. 그들은 부모님의 고향, 모국인  일본을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수학여행은 의당 일본 또는 신천지인 만주로 갔을거라 '추정'한다.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는 이렇게 자랑한다.

"우리는 수학여행 니뽄으로 간다."

참고로 일본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니뽄' 또는 '니혼'이 있는데, 일본에 한참 잘나간다고 했을때는 자기네를 강렬하게 '니뽄'이라고 했고,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자 스스로를 '니혼'이라 불렀다. 지금은? 극우주의가 강해지면서 '니뽄'이 점점 고개를 처든다고 한다.

조선인들이 다니던 고등보통학교는  극소수만 입학할 수 있었고 엘리트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의식했을까? 굳이 반일이니 항일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일본인 학생들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야시가 그렇게 말할 때, 우리의 부산고보생인 장동그니는 뭐라고 반응했을까?

1) 니나 가라 니뽄.

2) 우리도 간다, 니혼.

'설레고 설레이는' 수학여행 철이 왔다고 치자. 

일본인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조선에 있는다면 모를까. 그들은 일본이나 만주로 가는데 우리도 명색이 엘리트 고보인데 왜 기껏 경주나 금강산으로 가냐? 라는 멘탈리티였지 않았을까? 라이벌 의식은 이런 디테일에서 발현되는 거다. 당시 축구경기에서처럼 말이다.

교장선생이 안간다고 하면 교무실에 야구방망이 들고 쳐들어 갔을 것이다. 비록 일본으로 여행가는 건 상당히 돈이 많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가 가오가 없나, 돈이 없나. 지들보다 입학 성적이 낮나.'하면서.

수학여행도 트렌드가 있다. 그 트렌드에는 '우리가 개네들보다 못한게 뭐가 있어서'라는 멘탈리티로 추동되는 경우가 많다. 

배재고가 제주도로 간다면, 양정고 고딩들은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제주도나 쓰시마로 가자는 마음일거다. 대원외고가 하와이로 간다면, 한성외고생들이 '니나가라 하와이'라는 느긋한 심뽀는 아닐 것이다. 

수학여행은 당시 학생들에게 최고의 로망이었다. 여기에 총독부 학무국의 '일방적'인 음모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져서일 것이다. 

조선인 학생들은 자존심으로 '간절히' 원하고, 총독부는 이른바 '일선융화'를 위해 언감청고소원이지 않았을까? 모든 걸 음모 음모로 몰고 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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