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한 번씩 생각나는 산이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 뒤편에 나 있던 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족 세 팀이 청도 운문사 앞에서 모여 간단한 나들이를 했습니다. 4년 전쯤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어째서인지 몸이 피로하여 등산은 안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사촌 동생이 제 손을 잡고 산을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생각하며 저는 동생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다 컸는데도 동생이 제 손을 잡아 주니, 그건 또 얼마나 뭉클하던지. 이렇다 할 사춘기 없이 묵묵히 잘 자라 준 동생이 고마웠습니다. 저는 유별난 사춘기를 지낸 터라.

그때 동생이 한창 즐겨 보던 드라마가 있었는데(제 기억이 맞다면 그 드라마는 <육룡이 나르샤>입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어찌나 일목요연하게 잘하던지, 저는 동생을 칭찬하며 "너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 너무 잘하는데."라고 했습니다. 그 애가 이제 수능을 칩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한 아이라 그런지, 문학 점수는 잘 받는다고 하네요. 모쪼록 동생이 스트레스 안 받고 입시 관문을 잘 통과했으면 좋겠습니다. 

운문사에서 만난 가을은 제 가슴을 활활 태우는 듯했습니다. 붉게 물들다 못해 땅에 떨어진 낙엽들을 밟으며 저는 가을 속을 헤집고 들어갔습니다. 정상 부근에 다다라서는 너무 힘들어 등산을 포기할까 했는데, 동생이 끝까지 제 손을 놓치지 않아, 그 덕으로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날 날이 조금 흐려 화창한 풍경을 보진 못했지만, 마음이 내내 화창하여 즐거웠습니다. 

사는 게 뭔지, 서로 살아가기 바빠 동생과 저는 지금 조금 데면데면하네요.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막역해지는 데 약간의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씩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동생을 격려하고, 동생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그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모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지만 제 나름의 내리사랑이기도 합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자라 한 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요. 

청도 운문사에도 지금 가을이 왔겠죠.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