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학년도부터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교육 당국은 수능 시험 날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에게 수능 샤프를 제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수능 샤프가 교체된다는 소문이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수험생들의 동요가 시작됐는데요. 샤프 선정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품명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자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청원 글이 게시되었는데요.

그깟 샤프가 뭐길래 수험생들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걸까요? 단순히 필기구 하나만을 바꿨다고 하여 수험생들이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더구나 수험생 모두에게 똑같은 제품이 제공되니, 특별히 문제의 소지도 없을 법한데 말입니다.

하지만 직접 시험을 치르게 될 당사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른 모양입니다. 그동안 갈고 닦아 온 실력을 단 하루 동안 펼쳐 보여야 하는 심리적 압박감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그들에겐 필기감조차 온전한 실력 발휘 요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시험장에서 사용하게 될 샤프와 동일한 제품을 미리 구입하여 필기감을 몸에 익혀 놓아야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긴 우리에게 수능이 어떤 시험이던가요. 수능 당일이 되면 온 나라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관공서 등의 출근이 한 시간 늦춰지고, 항공기와 헬리콥터 등의 이착륙이 전면 금지되지 않던가요. 이토록 온 나라가 시험 하나로 인해 들썩일 정도이니, 직접 시험을 치르게 될 수험생들이 필기감을 호소하는 일쯤이야 얼마든 애교로 받아들여질 법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정성을 강조하며 정시를 늘리는 방향으로의 대입 제도 개편을 약속했습니다. 현재 교육부가 이에 대한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이며,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열띤 설전을 펼치고 있는 와중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찬성하는 측은 정시가 그나마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전형이라는 주장이고, 반대하는 측은 정시 확대는 결과적으로 사교육 시장만 부풀리고 서울 강남 등 교육 특구의 득세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의견 모두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작금의 교육 환경을 놓고 볼 때 뚜렷한 해법 마련이나 대안 찾기가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더구나 교육 당국은 최근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점차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교육 체계의 변화는 교육 주체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하는 사안입니다. 오죽하면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일컬을까요. 그만큼 장기적인 비전을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요? 백 년은커녕 교육 수장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라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 주체들에게 돌아갔고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늘날 교육 시스템이 왜 이토록 누더기가 되어야 했는지 이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에 따르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일부 제도를 바꿔봐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원인은 다름 아닌 학벌주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공고한 학벌주의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대입 제도의 개편이나 고교 체계 개편 따위의 일부 시스템의 변화는 찻잔속 태풍으로 그칠 공산이 큽니다. 교육 당국이 이를 잘 헤아리고 정책을 이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다시 맞이하게 되는 수능입니다. 이번에는 수능 샤프가 수험생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깟 샤프가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야단법석이냐며 힐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능이 표면적으로는 시험 당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시험이기도 한 데다, 사실은 공정성의 잣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이 한 곳에 집약되어 발현되는 현상이기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하물며 수능 샤프 하나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판국이니, 교육의 향방과 교육 주체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될 교육 시스템의 변화야말로 얼마나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인지, 교육 당국은 이를 잘 헤아리고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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