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김장이 다 끝났습니다. 저는 닷새 가까이 몸살에 시달리다가 어제 오후부터 컨디션을 되찾았습니다. 저희 집 김장은 조금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는데, 노동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 치우침을 감당하는 사람이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저 세 사람입니다. 

백 포기에 달하는 배추를 혼자서 4등분 하고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듭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제가 이 일을 시작했으니(그때부터 배추 썰기를 혼자 했습니다. 배추를 뽑고 소금에 절이고 헹구고 하는 건 어머니, 할머니와 같이 하구요. 배추 헹구기에 참여하는 가족 한둘이 간혹 있습니다. 양념에 배추 절이는 일만 모든 가족들이 함께합니다. 그마저도 '모든' 가족이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20년 가까이 집안 대소사를 거든 셈인데요. 이제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웬만한 중역이 된 것도 같습니다. 농사도 직접 짓고 하니까 어머니와 할머니가 마음 놓고 일을 맡기시는 듯합니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자꾸 늡니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분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저의 큰 행복이고 기쁨이고 한편으로는 안도입니다. 연로하신 두 분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라도 있으니까요. 두 분이서 그 많은 일들을 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끔찍할 때도 있습니다. 

김장 담을 때마다 억눌러 온 분노가 폭발하여 어머니와 할머니랑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지긋지긋할 만큼 싸웠네요. 왜 다른 식구들은 와서 돕질 않느냐, 배추에 양념만 묻혀 간다고 다 김장에 참여한 거냐, 허드렛일은 우리가 다 하고, 엄마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김장 비용 거의 다 내는데 우린 돈도 한 푼 못 받지, 등등. 계란에 바위 치는 심정으로 저는 가족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제발 다 같이 일을 하자구요.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두려워하십니다.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봐요. 저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가 너무 소모되는 것 같을 때는 익숙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저도 어깨와 손목, 허리가 많이 상했습니다. 철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초연해져 있습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 와 있는 것입니다. 저도 더 이상 분해하지 않습니다. 그럴 만큼의 에너지도 없구요. 일하러 가자 하면 가고, 가서는 제 몫을 묵묵히 합니다. 일당을 받는 것도 없고 수고비를 받는 것도 없지만, 이 전부가 제 일이려니 하고 있습니다. 불교식으로 생각하자면 이게 다 내 업보려니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일을 즐기기도 합니다. 운동하는 셈쳐야지, 하구요.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뀌는 동안 내 마음에도 굳은살이 좀 박인 모양입니다. 

제가 글을 쓸 때 한 번씩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뭔가를 당연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 또한 결국에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남들 힘든 만큼 힘들고 남들만큼 쉬고 싶은 한 인간.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앓아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멍울이 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손이 할머니 손을 닮아 가고 있는 걸 볼 때도 마음이 묘합니다. 어머니 손을 제 손이 닮아 가겠죠. 

보상을 바라지 않고 행하는 헌신은 고고하고 숭고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헌신의 수혜를 입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감사를 느낀다면, 그 헌신의 주체에게 뭐라도 보상을 해 주지 않을까. 진짜 감사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는 게 아닐까. 진짜로 감사를 느낀다면요. 받고 있을 수만은 없는, 어떤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저의 감사는 그렇기 때문입니다. 진짜 감사할 때 저는 그 감사를 가지고 어디로 가서 뭐라든 하려고 합니다. 감사하니까요. 

김치 5포기, 10포기 담는 것은 취미일 수 있지만, 100포기의 김치를 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동입니다. 집약적인 노동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몸이 알고 있습니다. 취미는 사람을 병들게 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기뻐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하시고 할머니는 이렇게라도 가족 간에 얼굴 보는 일이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하십니다. 정말 그것으로 된 걸까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뭐라도 해서 두 분이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싶다가도,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안 계시면 누가 김장을 할까요. 

제 마음속에는 아직 그 초등학생이 있습니다. 배추를 썰다가 손에 물집이 잡혀 인상 쓰고 있는 아이. 저는 자다가 깰 때 한 번씩 그 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애가 끊임없이 묻습니다. 뭐가 가족이냐고. 글쎄, 나는 무기력한 어른의 얼굴로 글쎄, 할 뿐입니다. 엄마랑 할머니를 그냥 둘 수는 없어,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다시 잠들 뿐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