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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이거 쓰나 몰라요. 포대기. 나 어렸을 때는 포대기가 육아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는데. 당신도 알죠, 포대기? 당신하고 나하고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니까, 당신도 이거 알 거 같은데. 당신도 누군가에게 포대기로 단단하게 업힌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있었겠죠.

꼭 주된 양육자만 포대기를 쓰란 법은 없었고, 나는 어릴 때 꽤 많은 식구들과 살았거든요. 기억에는 없지만, 이모나 할머니도 나를 포대기로 업어 주지 않았을까요. 잠투정하는 나를 재우려고. 아니면 우는 나를 달래려고. 그게 그때는 그렇게 흔한 물건이었는데. 한 집에 두세 개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포대기로 아이 업는 장면을 TV에서도 보기가 힘드네요. 재방송되는 드라마에서도 볼까, 말까….

지금도 포대기 파는 데가 있나, 해서 인터넷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된 건데요. 몇 년 전에 외국에서 포대기 열풍이 불었다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점점 사라져 가는 포대기가 외국에서는 엄청난 양육 도구라고 추켜세워졌다고 해요.

포대기로 아이를 업으면, 양육자와 아이가 육체적으로 되게 밀착되잖아요. 그런 동시에, 업혀 있는 아이는 손이랑 다리 일부가 자유로워서, 그렇게 구속감 같은 것도 없고. 양육자와 아이는 포대기 안에서 의사소통을 하거나 간단한 놀이를 할 수도 있구요. 양육자랑 아이가 심리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유대를 쌓기에는 포대기만 한 게 없다고 하면서, 수많은 해외 양육자들이 포대기를 찾았대요.

포대기 사용이 왜 양육에 효과적인가, 하는 점을 의학적으로 설명해 놓은 다큐멘터리도 있더라구요.

인간이 직립 보행을 시작하면서, 골반이 점점 작아졌대요. 뇌는 점점 커지고. 사람 골반 크기는 점점 작아지는데 머리 크기는 점점 커지니까, 태아가 뱃속에서 충분히 오래 지낼 수가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아이들이 조산早産되기 시작했어요. 자궁 속에서 몇 개월을 더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버린 거예요. 산모의 몸속에서는 더 자랄 수가 없으니까.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어미 몸에서 나오자마자 걷거나 헤엄칠 수 있잖아요.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최소한은 제 생명 활동을 책임질 수 있는데…. 인간은 그게 안 돼요. 너무 일찍 태어나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한테는 자궁 속 환경을 인위적으로라도 마련해 주는 게 좋대요. 이때 포대기로 아이를 업으면, 아이가 자궁 속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포대기는 양육자와 아이가 신체 접촉을 상당한 수준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인데, 양육자와 아이의 신체 접촉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도 촉진된다고 해요. 아이를 충분히 오래 안아 주거나 업어 주는 게, 아이의 두뇌 발달, 사회성 발달 같은 것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어째서 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애도 없는 사람이 왜 갑자기 포대기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냐구요. 사람에게는 수많은 정신적 양육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성인이 되어도, 중년에 접어들어도, 심지어 노인이 되어도, 사람은 그 정신적 양육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지낸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양육자와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리고 그런 양육자와 함께하는 모두가 똑같은 종류의 보살핌을 받고 산 것도 아니겠고. 근데 뭐가 어찌 됐든,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양육자가 있었어요. 정신적 양육자.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몸체를 다정하게 살펴주고, 그것을 건강하게 살찌워 준 사람이. 웬만하면 하나가 아닐 거예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우리는 물리적인 포대기에 업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포대기에 업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는 생각.

우리의 정신적 양육자는 우리의 실제 양육자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자식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어요. 뭐, 사실 몸이 몸을 돌보는 일에서도 나이 차이가 별로 상관없긴 한데, 정신이 정신을 돌보는 일에서 나이 차이라는 건 더더욱 쓸모없는 거라.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누군가의 정신적 양육자였겠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고.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한, 그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서로가 서로인 한, 서로는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다고. ‘함께’라는 것의 본질이 그래서.

그냥 무사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원치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쓸 만한 인간이고, 이미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인간인 거죠. 그 생각이 요 며칠 내 마음을 얼마나 아름답게 해 줬는지 몰라요.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