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빠….”

그렇게 중얼거린 준영이 나에게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나누자는 거였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질 때 으레 나누는 인사. 나는 준영의 손을 잡고는 준영을 내 쪽으로 조금 당겨 본다. “그래, 가라.”

준영은 내 눈을 보지 못한다. 그 대신, 내 쇄골 근처를 훑어보고 있다. 준영이 내 몸 어딘가를 자세히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내게 익숙한 모습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준영이 사람 눈 쳐다보는 걸 조금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내가 느낀 게. 벌써 몇 년 된 일이다. 의사가 되겠다며 (정확히 말하자면 ‘닥터’가 되겠다며) 총기 있는 눈으로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듯 바라보던 세 살배기 준영은 지금의 준영 안에 남아 있지 않는 걸까.

오늘날 준영은, 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이유로 형과 형수에게 온갖 핍박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 준영의 동생 부영도 준영을 깔보기 일쑤다.

 

마음 오갈 데 없는 인간이

가장 자주 도착하는 곳은 어디였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준영을 마지막으로 안아 준 게 언제였지. 준영이 다 컸다는 이유로, 나는 준영에게 얼마간 거리를 두었다. 내가 예전처럼 틈 날 때마다 준영에게로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 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면, 준영이 성가셔 할 것 같았으니까.

나는 준영에게 친구 같은 작은 아빠가 되어 주고 싶었다. 훈계도 잔소리도 안 하는, 편안한 작은 아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준영에게 기본적인 작은 아빠 역할도 제대로 해 주지 못한 것 같다. ‘친구 같은’ 작은 아빠는 고사하고….

급속히 팽창해 나가는 준영의 세계에서 더는 내가 괜찮은 어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준영에게서 한 발 물러선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이제 나 자신이 준영에게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는 걸 내가 직면하기 싫어서….

나는 준영에게 물어 본 적 없다. 내가 너에게 뭘 해 줬으면 좋겠냐고. 내가 너한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냐고. 너는 어떤 작은 아빠를 원하냐고.

준영이 어렸을 때도, 준영이 스무 살이 된 지금도, 나는 내 판단에만 의존해 준영과 관계할 뿐이다.

 

형수가 “어머니….” 하며 엄마를 살짝 안는다. 나도 (절반쯤은 엉겁결에) 준영을 향해 팔을 벌려 본다. 준영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내 품으로 들어와, 두꺼워진 지 두 팔로 내 등을 감싸 안는다. 마치 그 순간을 오래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준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를 껴안았다. 목 아래쪽에서 이상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나와의 포옹을 끝낸 준영이 다시 내 손을 찾아 쥔다. “작은 아빠, 안녕.”

형보다도 내가 좋다며, 내 목에 지 두 손을 감고 내게서 좀처럼 떨어지질 않던 어린 준영의 모습이 눈앞을 빠르게 스친다. 나는 그런 준영을 목마 태우고 형네 집 근처 할인 마트에 가곤 하였다. 바나나 우유를 사러. 그때 준영은 그 우유를 정말로 좋아했다(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바나나 우유 사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곤한 낮잠을 자다가도 벌떡 깨 가지고 슈퍼 비닐봉지 안을 열심히 뒤적거릴 정도로.

준영이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때 준영 위로 펼쳐진 모든 날씨들은, 준영의 들숨을 타고 들어가 준영의 일부가 되었을까. 그때 내가 일부러 뛰면, 내 양쪽 귀를 손잡이처럼 꽉 잡고 준영은 비명을 지르듯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아 애석하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소리들 중 하나였는데, 그건.

 

내 자식을 낳기 전까지, 나는 준영을 내 자식처럼 어여삐 여겼다. 물론, 내 자식을 낳은 후에 내가 준영을 이전보다 덜 사랑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그런 분리가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그래. 나가자.”

준영의 손을 놓은 나는 신발을 허둥지둥 꿰어 신으며 말했다. 준영은 김치가 든 천 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 형이 마당에 차를 대고 있다. 형수는 엄마에게 김칫값이라며 흰 봉투를 내밀고, 엄마는 한사코 돈을 안 받겠다며 씩씩댄다.

준영을 쳐다보지도 않고 준영에게서 천 가방을 받아 든 형이 트렁크 쪽으로 걷는다. 나를 뒤따라온 형수가 “고생했어요.”라며 내 등을 잠깐 다독거린다.

“제가 고생은, 무슨…. 형수가 더 고생하셨지.”

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도 현관 밖으로 나온다. 아내와 엄마가 나란히 나를 본다.

“지형이는? 큰아빠, 큰엄마 가시는데 인사 드려야지.”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자신이 방금 빠져 나온 현관을 돌아본다. “자더라. 자기 폰 꼭 쥐고.”

“자게 내비둬라.”

엄마가 그렇게 말하며 형 쪽으로 걷는다. 짐을 다 실은 형이 트렁크 문을 닫으며 엄마를 돌아본다. “엄마, 갈게요.”

“그래…. 아무쪼록 너거가 준영이 잘 돌보고…. 아가 너무 말랐다. 뭐가 우예 되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으이? 와 대답이 없노?”

엄마가 두 손을 허공에서 휘적거리며 이야기했다. 형이 두 눈을 끔벅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켠다. “아, 엄마는…. 우리가 알아서 다 하지.”

“알아서 하는 기 그 모양이가!”

엄마가 형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찌르며 소리쳤다. “나는 니 그래 안 키았다이. 그라이 니, 나중에 내 탓하지 마래이.”

“갈게요.”

형이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형수가 엄마 어깨를 주무르며 “더 신경 쓸게요.” 한다. 아내가 내 옆에 와 선다. 텅 빈 거실에 켜져 있는 TV에서 왁자한 소리가 나는 듯하다. 나는 아내를 돌아본다. “둘째 갖지 말까?”

“뭔 소리래, 갑자기…. 언젠 둘째 만들자고, 만들자고, 아주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아이다. 지형이한테 가 봐야….”

나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형의 차를 돌아본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준영이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준영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내가 빙긋 웃으며 “준영아, 잘 가!” 한다. 차창을 내리고, 준영이 목례한다. 준영은 아내의 서울말을 (예쁜 말이라고) 늘 좋아했는데.

아내가 준영에게로 다가선다. 그러더니, 자기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차 안으로 쑤시듯이 넣는다. 준영이 “아, 작은엄마….” 하더니 난처하다는 듯 신음한다. 아내가 다시 이쪽으로 온다. 준영이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내 눈을 쳐다본다. 나는 다시 준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준영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수석을 바라본다.

 

엄마 말이 맞다. 엄마는 형이 준영을 키우듯 형을 키우지 않았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기도 한데) 엄마가 형보다 나를 더 귀여워하고 챙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나와 형을 노골적으로 차별한 적은 없다. 막내인 나에게 당신 마음이 기울고 있는 걸 느낄 때, 엄마는 오히려 형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형보다 내가 엄마한테 더 많이 혼나며 컸다.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전화해 그런 말을 했다. “너거 형아가 내한테 복수하는 건가, 싶다, 야…. 너거 어릴 때 내가 니 더 이뻐했다고, 어? 너거 형아가 준영이 쳐다보는 눈빛 보마, 내 살이 다 떨린다. 그양 떨리는 기 아이고, 벌벌 떨린다. 지 자식을 우예 그래 보노, 으이? 준영이가 지한테 뭔 잘못을 하길 했나? 솔찍한 말로, 준영이만치 바르게 크기도 힘들겠다. 맞나, 아이가? 가가 사고 한 번을 안 치고, 으이? 근데도 가 준영이한테 허구한 날 핀잔에…. 쟈들이 준영이 다독거리는 꼴을 내가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준영이 어마이도 글타. 지라도 준영이 좀 감싸 주면 어디 덧나냐, 이 말이다. 니는 우예 생각하는데? 아직도 내 속만 터지나? 어제 너거들 그래 가고, 나는 잠 한숨을 못 잤다. 준영이 그 놈이 오죽했으면 거서 울었겠나. 부영이 금마 그것도 싫다, 이제는. 너무 오냐오냐 컸다. 눈까리에 비는 게 없다, 가가. 저거 어마이, 아바이 등에 업고…. 니라도 준영이 쫌 챙기라. 니가 부모는 아니라도, 으이? 준영이가 니 얼마나 따르노. 니가 주말에 날 한 번 잡아가, 준영이 델꼬….”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나에게 준영을 부탁하던 엄마는 결국 훌쩍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형이 “임마 이거는, 쓰잘데기가 한 개도 없다.”며 준영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려쳤는데, 준영이 거기서 울음을 터뜨렸다. 쥐며느리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준영이 우는 걸 보자마자 형의 눈에 살기 같은 것이 돋아나는 듯하였고, 형의 그 눈을 엄마와 나는 똑똑히 보았다.

 

“자기야, 아까 그 얘기, 뭔데?”

내가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둘째 얘기.”

나는 카시트에 잠들어 있는 지형을 돌아본다. “아, 말 그대로지, 뭐. 둘째 갖지 말까, 물어본 거다, 자기한테. 자기 생각은 어떠냐고.”

“그니까 왜?”

아내가 내 오른손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어머님이 뭐라고 하셨어?”

“아니….”

“그럼?”

“왜, 자기는 둘째 갖고 싶나?”

“그게 아니라…. 갑자기 자기가 태도를 바꾸니까, 난 자기한테 뭔 일이 있었나, 하고….”

“뭔 일이야 늘 있었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내의 눈이 커진다. “뭐, 준영이 때문에 그래?”

나는 말없이 핸들을 두 손으로 쥐며 고개를 떨군다. 새빨간 관광버스 한 대가 우리 차 앞을 느리게 지나친다. 요란한 뽕짝 소리가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자기도 그럴 거야? 아니, 자기도 그럴 거 같아? 둘째 생기면, 지형이한테…. 아니잖아.”

아내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나 봐.”

나는 아내를 돌아본다. 지형이 몸을 뒤척거리며 희미한 옹알이를 한다.

“왜 그래….”

아내가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다.

“모르겠다. 뭐 때문인지. 그양 마음이 복잡해가…. 뭐가 맞나, 싶고. 준영이 금마 보고 있으면, 나는 아 하나라도 잘 키아야지,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요새. 준비도 안 됐는데 둘이 낳아가, 둘 다 허투루 키우지 말고…. 솔찌기, 내 욕심이다, 자기야. 아 둘이 놓자 카는 거, 내 욕심이다. 지금도 자기 얼마나 힘드노. 지형이 하나 보는 걸로도 몸 다 무너지는데…. 내가 퇴근을 일찍 하나, 주말 이틀 다 놀기를 하나. 생활비만 주지, 내가 뭘 하는데. 하는 거 아무것도 없다. 내가 욕심 부렸다. 자기야, 우리….”

“자기야.”

아내가 내 말을 끊고 나를 불렀다. “자기가 하는 게 왜 없어. 말 그렇게 하지 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말끝을 얼버무리자, 아내는 미지근한 손바닥으로 내 뺨을 한 번 만지더니, 차 밖으로 나간다. 아내의 뒷모습이 작아진다.

 

형은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다. 고지식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거의 모든 면에서, 형은 나보다 더 열려 있고, 깨어 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 직전에, 형이 나와 아내를 자신의 집에 부른 적 있다. 그때 형은 아내에게 “나랑 내 와이프, 아주버님, 형님, 이렇게 부르지 마세요.”라고 했다. 성차별적인 가족 호칭 문제를 우리끼리는 답습하지 말자고. 그래서 사석에서 (공석에서는 호칭을 최대한 생략하고 함께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 네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형은 지형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큰아빠다. 지형이 자기 새 옷에다가 토를 해도, 형은 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지형이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형은 자상하고 서글서글한 어른이다. 형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형이 사람 가리는 걸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형은 조금 걱정될 만큼 반듯한 사람이고, 불의를 그냥 감내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일인지에 관해 자주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다. 그런 형이 준영을 대할 때는 아주 딴사람이 된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왜 형의 인생에서 준영은 철저한 예외일까. 왜 준영은 안 되고 부영은 되는 걸까. 왜….

 

지형이 칭얼거리며 실눈을 뜬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 문을 연다. 지형의 울음소리가 차츰 선명해진다. 먼 데서 뽕짝 메들리 두 개가 혼탁하게 뒤섞이고 있다. 나는 차창을 두드리며 지형을 부른다. 지형이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본다. 지형이 그 작고 하얀 손을 나에게로 내민다.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 미어지게 하는 그 예쁜 손을.

“지형아! 지형아! 아빠 여기 있어!”

나는 차창을 두드리며 다시 소리쳤다. 지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 쪽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안아 달라는 거다.

나는 뒷좌석 문을 열고 지형 옆에 앉는다. 카시트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지형이 울음을 뚝 그치고 나에게 얼른 안긴다.

“어뻐, 어뻐….”

지형이 내 목덜미에 대고 중얼거렸다. 휴게소 입구에서 아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형의 양발이 내 허벅지를 번갈아 디딘다. “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