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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봄을 박탈되어 버린 사회이다. 봄의 향기를 맡고 봄의 따뜻한 온도를 쐬게 밖에 외출할 권리도 박탈되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 합법적인 대한제국 점령

 

부제:코로나 19 방역 감시통제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합법이라면 경술국치도 법대로 했으니 합법이네? 오히려 친일파가 경술국치 부추긴것처럼 개돼지가 나 좀 잡아 잡수시라고 검역 통제 사회를 빨리 오라고 부추기는 괴현상이 조선반도에 벌어지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開闢)》지(誌) 6월호에 발표된 이상화의 시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나라를 잃어버린 한과 저항의식을 주축으로 하여 식민지 치하의 가난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 아낙네들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없는 반항의식을 나타내고 있고, 동족애와 식민지적 비애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저항의식을 나타내 주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지금은 봄을 박탈되어 버린 사회이다. 봄의 향기를 맡고 봄의 따뜻한 온도를 쐬게 밖에 외출할 권리도 박탈되었다. 햇볕을 안쐬면 비타민 D합성이 떨어지며 면역이 저하되는데 말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여야 막론하고 절대 찬성으로 의료 계엄령이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은 마스크만 쓰면, 사회적 거리두기만 하면, 이동을 안하면, 속고 또 속아가면서 백신만 맞으면 이제 봄처럼 마스크나 이동통제에서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게 되리라 착각하지만 권준욱이나 조지 소로스 등이 분명히 예전 세상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을 했으니 기대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만약 이런 언론과 사회, 국민 이동권 통제가 합법이라면 한일 병합조약도 계약에 의한 법적 관계이니 합법이란 것이다. 물론 경술국치 사건도 이완용등 친일파가 일제 앞잡이가 되어 오히려 더 순종황제를 압박하고 거의 억지로 조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 큰 황당한 점은 순종의 옥새가 찍히지 않았으며, 일본 천황의 도장조차 찍히지 않았던 것으로 조선 민족의 귀와 눈을 가리고 각종 불법적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아래 경술국치 위키백과를 보면 조선이 피를 가진 친일파 작자들이 일제놈보다 한술 더 떠 나라를 팔아먹는 장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현 백신을 빨리 구매하라는등, 3단계로 방역 올리거나 셧다운을 시켜야 하다는 등 같은 동포를 핍박하고 경제를 망치는데 선동되어 일조하려는 세력이 분명히 예나 지금이나 존재함을 알수 있다.

 

한일 병합 조약(한국 한자: 韓日倂合條約) 또는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일본어: 韓国併合に関する条約 칸코쿠 헤이고니 칸스루 조야쿠)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합병조약이다.

한일 합방 조약(韓日合邦条約)이라고도 불린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졌고, 이날 일본 제국 천황이 s:한국의 국호를 고쳐 조선이라 칭하는 건과 한국 병합에 관한 조서를 공포함으로서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국권피탈(한국 한자: 國權被奪), 경술국치(한국 한자: 庚戌國恥) 등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일본 제국은 병탄의 방침을 1909년 7월 6일 내각회의에서 이미 확정해 놓고 있던 상태였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제적 명분을 얻는 일만 남겨두었다. 일본 제국 정부는 일진회 고문 스기야마 시게마루(杉山茂丸)에게 ‘병합청원’의 시나리오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송병준은 이에 앞서 1909년 2월 일본 제국으로 건너가 매국흥정을 벌였다. 여러 차례 이토 히로부미에게 ‘합병’을 역설한바 있었으나 일본 제국 측의 병탄 계획 때문에 일이 늦어지게 되자 직접 일본 제국으로 건너가서 가쓰라 다로 수상 등 일본 제국의 조야 정객들을 상대로 ‘합병’을 흥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이완용은 송병준의 이런 활동을 눈치채고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 미도리(小松緑)와 조선 병탄 문제의 교섭에 나섰다. 이완용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일본 제국에 유학했던 이인직을 심복 비서로 삼아 미도리와 교섭에 나서도록 했다. 이 무렵 통감부에서는 이완용 내각을 와해시키고 그와 대립 관계에 있던 송병준으로 하여금 내각을 구성하도록 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충성 경쟁을 부추기려는 전술이었다.

 

송병준 내각이 성립된다면 보복당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합방의 주역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이완용은 “현 내각이 붕괴되어도 그보다 더 친일적인 내각이 나올 수 없다.”면서 자기 휘하의 내각이 조선 합방 조약을 맺을 수 있음을 자진해서 통감부에 알렸다.

이런 시나리오를 연출하면서 일본 제국은 점차 ‘병탄’의 시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판단, 시게마루를 내세우고 이용구·송병준 등을 이용하여 ‘합방청원서’를 만들도록 부추겼다.

 

또한 일본 제국은 조약이 누출되어 조약에 반대하는 소요 등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나남·청진·함흥·대구 등에 주둔한 일본군을 밤을 틈타 서울로 이동시켰다. 조약 체결일인 8월 22일 응원병력과 용산에 주둔한 제2사단이 경비를 섰다.

창덕궁 흥복헌으로 불려온 대신들 중 학부대신 이용직은 조약을 반대하다 쫓겨났고, 이후 이른바 경술국적이라고 불리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친위부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승녕부총관 조민희 8명 친일파 대신은 조약 체결에 찬성, 협조하였다. 이 8명은 한일 병탄 조약 체결 이후 공을 인정받아 조선귀족 작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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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20-12-22 23:34:11 118.235.***.***

    역사적 사실과 민족시인의 싯구를 들지 않아도 충분히 이시대를 탓할만 합니다.
    말 잘듣는 백성은 늘 고달프고 ...
    언제나 내탓이라고 한 번 말하는이 있을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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