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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역사, 장클로드 볼로뉴, 사회적수치심, 예절, 욕조, 정숙, 수치심이 여성 전유물, 이성과의 교접, 외설, 나체의 그리스도, 파렴치한, 관습적 수치, 준엄한 성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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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_ 말에 대한 두려움
임시방편들
독실한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특수한 영역
문제가 되는 말들

Chapter 11_ 벌거벗은 신(神)
수난
나체의 그리스도
외설인가, 파렴치함인가?

Chapter 12_ 광고에서의 수치심
새로운 문제들
법률적 해결과 대중의 검열

결론 수치심의 역사적 영역
고대의 유산 - 신성한 수치심
종교적 수치심
관습적 수치심
17세기의 사회적 수치심
선량한 미개인
개인적 수치심
"준엄한 성(性)의 왕국"(푸코)
수치심을 다시 정의해 본다

책 속으로

욕조와 수치심 16세기 이후 사생활에서의 목욕은 중세시대 손님 접대라는 맥락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된다. 욕조에서 손님을 맞는 일 -‘전신욕’중이었건‘반신욕’중이었건- 이 무례로 여겨지지 않았다. 16세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테마 즉, 목욕 중 들이닥친 손님을 맞이하는 귀부인이라는 주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인을 그리기 위한 구실이기도 했지만, 18세기까지 상류층 여성이 목욕 중에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치심과 옷 “옷은 우리를 나체의 부끄러움에서 엄호해 주고, 추위나 더위 등 악천후로부터 몸을 보호해 준다.”1601년, 벨기에의 신부 장 드 글렌은 수 세기 동안 논쟁거리가 될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옷이 먼저냐 아니면 수치심이 먼저냐는 문제다. 종교계의 모럴리스트들은 원죄를 저지른 후 아담이 느낀 수치감을 원용하면서 수치심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나체주의 지지자들은 의복이 수치 감정을 만들었다고 반박하며, 선교사들이 강요한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원주민들은 이전의 나체 상태에 대한 수치심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의학적 수치심 “자연에 관한 일에 부끄러운 것은 없다." 수치심의 역사에서 의학적 수치심이라는 항목을 삭제하는 데에는 의학계의 오래된 이 격언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의사 앞에서 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 예만 들어도 이런 원칙이 때로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침대에서의 수치심중세를 산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은 대개 한 칸으로 만들어진데다, 그나마 대형 공동침대가 그 절반을 차지했으므로 사생활이나 수치심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17세기에 수치심의 방향은 아래에서 위로 향했으니,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은 그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같은 계급의 사람끼리는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잠에서 방금 빠져 나온 듯 알몸의 아름다운 여인을 불시에 목격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런 상태로 남자가 목격되는 경우에는? 예상밖의 수줍음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면 친구들의 조롱을 받았다.

알몸 행진 나체는 그것이 우연히 보였는지, 의도적으로 보였는지, 얼핏 보였는지, 전시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자들 앞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당당하게 몸을 노출했던 17세기의 남자들이 속옷차림으로 태형을 당할 때 그들의 얼굴을 붉히게 했던 그 이상한 수치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의식되지 않을 경우 나체는 신화적 무구함 -황금시대, 에덴동산, 나체주의의 천국- 을 획득하며 그런 상태를‘수치심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의지에 의한 경우, 나체는‘파렴치함’을 표현하며 그것은 민법, 도덕 그리고 종교당국의 제재를 받는다. 강제로 나체로 만드는 것은 최악의 능욕이었으며, 그것은 과거의 당국자들이 자주 사용한 불명예스러운 징계였다.

변기 의자에서의 대화 변소에서의 수치심이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16세기부터다. 그때부터 변소들이 점차 성채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겉모습과 치장에 현혹된 문명, 완벽한 건축적 공간 구성을 위해 육체의 생리적 욕구를 부정하는 문명에서 변소의 철폐는 증후적인 것이었다. 엄격한 대칭 원리 -질서정연한 문명 자체를 석조건물을 통해 상징화하는- 에 따라 설계된 저택 어느 곳에‘사실(私室)’을 둔다는 말인가? 그런 연유로 궁궐에서 연회가 열릴 때면 연회장의 벽난로, 문 뒤, 벽지, 발코니 등 아무데나 대소변을 내갈기곤 했으니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궁정의 포석 하나하나에, 계단 하나하나에 똥덩어리가 묻어 있는 셈이다.

벌거숭이 임금님 수치심이 예법서에 등장하자 자기 행동을 뒤돌아보는 습관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졌다. 14세기에서 17세기의 예법서의 규정들이 상류계층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고위층들은 예절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면제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감히 왕에게 수치심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관습이 굳어지면 허용 범위에 있던 것들은 의무사항이 된다. 왕에게는 수치심이 금지된 것이다.

조형예술과 수치심 17세기는‘수치심이 요구하는 가필’을 발명해낸 시대다. 다니엘라 다 볼테라가 수정했던 〈최후의 심판〉을 모범 삼아 은밀한 옷주름을 만들어내어 16세기 작품들에 덧칠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 오를리의 〈성 가족〉에 그려진 어린 예수의 성기는 푸르스름한 베일로 가려지고, 이렇게 덧칠한 부분은 1980년에 와서야 원상태로 복원된다. 조각 작품에서‘수정’은 단순히 거세 혹은 수집가와 미술관 관리자들을 괴롭히게 될 포도잎사? 닫기

출판사 서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극도의 부끄러움 때문에 궁정의 관례와 달리 주위 사람을 물리치고 혼자서 변기에 앉았다. 수치심 탓에 의사에게 궤양을 보이지 않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은 치료를 제대로 못 받은 채 목숨을 잃었다. 루이 13세 부부는 ‘정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궁정 벽화와 그림들을 훼손했으며, 당시 재상 마자랭도 같은 이유에서 많은 조각상을 부쉈다. 그러나 비슷한 시대에 몽트뢰유 벨레 남작부인은 용변 뒤처리 때에도 남의 도움을 받았는가 하면, 어떤 왕은 변기에 앉아 신하들을 만나고 연극배우들을 거의 벌거벗겨서 무대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수치(羞恥)와 무치(無恥)의 저 어지러운 공존!

일상의 삶에서, 역사에서, 그리고 예술 작품들에서 벌거벗음과 부끄러움과 뻔뻔함의 다양한 모습을 늘 접하는 가운데 우리는 숱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나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을까? 신체적 수치심과 감정의 수치심은 어떻게 구분되고 연결되는가? 벌거벗음이 부끄러움과 결합되거나 분리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회화와 연극, 문학에서 나체는 무슨 역할을 했는가? 에로티시즘이 포르노가 되고 예술이 외설로 넘어가는 지점은 어디일까? 도대체 수치심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응답이다.

《수치심의 역사》는 출간 후 프랑스의 유명 독서토론 프로인 베르나르 피보의 ‘아포스트로프’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역사부문 저작에 주는 테루안 상을 수상했다. 이번 한국어판은 프랑스외무부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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