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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부산에 있는 아이들을 찾았다. 이틀 전 둘째의 담임이 **가 이틀 째 학교를 안 왔다면 문자를 보내왔다. 분명 나에게는 일어났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학교에 잘 갔다고 왔다고 했는데... 수도 없이 빠지는 징계. 벌써 몇 번째인가.

다시 짐을 챙겼다. 2주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부산에 이틀을 머무르고 돌아왔다. 이렇게 다시 부산을 찾으리라 생각치 못했다. 텅빈 마음에 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표를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광주로 들러 가야 했다.

5시간을 꼬박 걸려 부산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었다. 어둑컴컴한 저녁이지만 대도시인 부산의 거리를 밝았다. 자동차소리, 여기저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니다.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꼬박 청소만 했다. 배달 기켜 먹고 음식 쓰레기를 제대로 치우지 않으니 온갖 벌레들이 들끓는다. 가끔씩 바퀴벌레도 보인다. 올때마다 밑도끝도 없는 슬픔의 구멍에서 한숨이 나온다. 남자둘... 엄마를 잃고 두 아이는 길을 잃었다. 아내를 보내고 한동안 너무 슬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1년을 보내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아이들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 번 엇나간 아이들은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재혼을 하면서 아이들은 더욱 엇나갔다. 누군가 내가 재혼을 할 때 막았더라면 좋았을걸. 재혼후 아이들 문제로 끊임없이 싸웠다. 교육관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문제였지만, 끊임없이 나의 두 아이를 양아치 취급하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일년 도 되지 않아 이혼하려 법정까지 찾았다. 하지만 2차에 가지 않아 결국 무산 되었다. 지금은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부유하듯 살아간다. 그럴수록 5년 전에 내 곁을 떠나간 아내가 너무나 그립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때 난 아내를 꼭 안고 있었다. 말 없이... 숨을 헉헉거리는 아내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숨소리를 작아졌고 이내 멈추었다.

수영구 버스정류장

이틀 후 아내와 함께 살았던 영도로 향했다. 1003번 버스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부산역에서 508번을 타고 고신대 교문 앞에서 내렸다. 부산은 길이 좁고 험해 계발이 어려운 도시 중의 하나이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변한다. 89년 처음 부산에 왔고, 91년 이후 계속 부산에 살았으니 꼬박 30년은 부산에 산 셈이다. 

부산역

여울길을 지나 목장원까지의 길은 다시 가도 무섭다. 깍아지른 언덕을 파서 만든 길은 위태위태하다. 처음 고신대를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날때 길이 낭떠러지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죽을 것 만 같았다. 차가 100m 가까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태연하다. 아! 이런 강심장들이 있나. 그러나 한 번 가고 두 번가니 곧 익숙해졌다.

고신대로 가는 208번 버스

고신대 정문에서 내렸다. 저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해양대와 조도가 한폭의 그림 같다. 영도를 떠난지 벌써 1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립다. 언제끔 멋드러진 풍경을 다시볼 수 있을까?

오륙도가 보이는 풍경

 

오륙도와 선박

 

 

 

 

#애도#사별#여행#부산여행#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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