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우리에게 일제 치하 36년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말 중에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일본 놈들에게 짓밟히고 유린당한 굴욕과 치욕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친일을 배워야 할까요. 굴종을 배워야 할까요. 기회주의 민족 배신을 배워야 할까요.

그따위 것들은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단호히 척결하고 배격하고 처단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가 비참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식민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굳건하게 치열하게 줄기차게 전개되어 온 독립 투쟁의 정신, 결사 항쟁의 정신일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백하게, 확실 분명하게 염두에 두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18~19세기 세계사 속에서 열강 강대국의 식민지가 된 나라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 민족처럼 그렇게 빨리, 그렇게 거족적으로, 그렇게 격렬하게 식민지 투쟁을 전개한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사가 입증하건대 우리가 유일합니다. 보십시오. 1910년에 나라를 잃었고, 그 9년 후인 1919년 3·1운동이 폭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찌 기억하십니까? 3·1운동이 폭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찌 기억하십니까?

3·1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그 양상을! 참가 단체가 600여 곳이었고, 참가 인원이 200여만 명이었고, 사망자가 7천5백여 명, 부상자가 1만 6천여 명, 투옥된 사람들이 4만 6천여 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회학 전공자들로서 이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전체 양상을 다시 똑똑히 보십시오.

3·1운동이 얼마나 거족적이고 전국적이었으며, 얼마나 치열하고 격렬한 투쟁이었는가를. 그 당시 우리 한반도의 총 인구는 2천5백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0여만이 참가했으니 몇 분의 1인 것입니까? 노인네 빼고, 어린애들 빼면 열 명 중 한 명이 독립 만세를 외치고 나섰으니, 이보다 더 큰 전 민족적 투쟁이 어디 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나라 인도는 작은 나라 영국의 식민지로 지배당하는 200여 년 동안 간디가 비폭력 저항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회학도로서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3·1운동이 그렇게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와 투옥자들이 발생한 치열한 독립 투쟁이고 가열찬 독립 항쟁이었는데 어째서 그 명칭이 겨우 '운동'인 것입니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명칭이 너무 잘못되었다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 문제는 우리 사회학도들이 풀어야 할 미래의 숙제로 남겨두도록 합시다.

자아, 봅시다 여러분! 3·1운동이 추동한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 땅 만주로 상해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만주 일대에서 본격적인 무장 독립 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상해에는 나라를 망쳐먹은 조선왕조와 단절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존재는 독립이 되는 그날까지 줄기차고 끈질기게 건재했습니다.

그런 36년 동안 일본 놈들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짓밟히고 억압당한 한반도 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농토를 강탈당해 소작인으로 전락한 수많은 농민들이 또다시 70퍼센트에 이르는 가혹한 소작료의 착취로 굶주림에 시달리며 끝없이 죽어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만주로, 만주로 이주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일본 놈들의 그 가혹한 소작료 착취하는 교활하고 악랄하게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첫째는 저희들 본토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더 많이 만주로 몰아내서 제놈들의 한반도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혹한 상황 속에서 일본 놈들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우리 민족에게는 더욱 혹독한 시련이 몰아닥쳤습니다. 남자는 징용으로 학병으로 수백만씩 끌려가야 했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위안부로 수십만씩 끌려갔던 것입니다.

그런 처절한 핍박과 유린 속에서 죽어간 우리 겨레의 수는 얼마일까요? 400여만 명이었습니다. 민족 전체의 20페선트 가까이가 죽어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 역사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도대체 일본 놈들이 얼마나 많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400만명씩이나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한반도 전역에 퍼져 있었던 일본 놈들 숫자는 80여만 명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똑똑히 보십시오. 80만 명이 400만 명을 죽인 것입니다. 일본 놈 하나가 우리나라 사람 몇을 죽인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두 번째 역사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길래, 얼마나 못났으면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했을까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투쟁 방법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일본을 상대로 한 투쟁 방법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벌써 탁월하고 위대한 시범을 보여준 분이 계십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그분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일본인 300만을 이주시키면 한반도를 영구히 지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한 살의 나이로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의연하고 고결하게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본 놈들의 마수로부터 조국을 지키는 것은 일본 놈들을 보는 족족 죽이고, 함께 죽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일본이 우리나라에 강탈했을 때, 처음부터 80만 명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건 해방 직전의 최대로 많을 때의 숫자이고, 처음에는 몇천 명으로부터 시작해서 계속 불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의 가르침을 따라 나라를 빼앗긴 그날부터 일본 놈들이 눈에 띄는 대로 매일 죽여, 날마다 경기도에서, 전라도에서, 평안도에서, 충청도에서, 경상도에서, 황해도에서, 함경도에서, 서울에서 일본 놈들이 죽어가고, 헌병과 순사들은 도망간 범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좌충우돌하고, 그렇게 100일, 200일이 지나게 되면 일본 놈들은 범인들을 뒤쫓을 병력도 모자라고,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에 휩싸여 한반도 지배 야욕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을 것입니다.

그 증거를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의열단이었습니다.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되었습니다. 그들 13명의 단원들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가르쳐준 '너 죽이고 나 죽기'를 결의한 무장 투쟁 결사대였습니다. 잘 훈련된 그들은 국경과 해안 경비를 뚫고 잠입해 거침없이 부산경찰서 폭파, 밀양경철서 습격, 총독부 습격, 황포단 사건, 종로경찰서 사건, 니주바시 사건,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황옥 경부 사건 등의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니고, 계속해서 터지는 그런 대형 사태로 혼비백산하고 경악한 일본 놈들은 어찌했을까요. 김원봉 단장의 목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 금액은 백범 김구에 걸린 현상금보다 더 큰 최고액이었습니다. 의열단의 결사 투쟁의 효과는 그렇게도 컸던 것입니다. 그들의 결연한 무장 투쟁은 100번, 200번, 그리고 1,000번으로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결사를 각오한 새 단원들은 줄 서 있었지만 투쟁 자금이 고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단원들이 훈련하고, 숙식하고, 폭탄과 총알을 구입해야 하는 비용을 조달할 데가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 놈들의 국경 통제가 한층 삼엄해진 데다가, 부자들이 거의 다 친일파로 민족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상해 임정의 요인들이 끼니를 거르는 형편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찌할 수 없이 의열단 존재는 사라졌고, 일본 놈들의 온갖 만행은 해방의 그날까지 거칠 것 없이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자아 여러분, 우리는 그러한 역사 사실 앞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요. 의열단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나섰고, 우리는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거기에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의열단원들의 결의와 결시을 본받고 배워서 강하게 뭉치고 굳세게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척결하고자 하는 적폐는 그 뿌리가 수십 년씩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우리 힘껏 싸웁시다!

알짬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