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런저런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손해(損害)는 ‘손실과 해로움’을 의미하는데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관계를 맺는 동안, 우리가 가진 무언가를 잃거나 우리의 부분적인 부분에 해를 입곤 합니다.

   그런데 손해와 이익은 아주 상대적인 거여서, 누군가에게 이익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손해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이익이 되기도 합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손해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상대적인 손해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거 하기 싫은데 그걸 해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누구한테는 좋은 일이 누구한테는 안 좋아서, 어느 쪽은 득을 보고 어느 쪽은 해를 입는 경우. 때로는 윗사람 때문에 때로는 다수결 원칙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감수해야 합니다. 흔한 예를 들면 이런 게 있겠죠. 직장 상사가 등산을 아주 좋아해서, 주말마다 산으로 불려 다니는 부하 직원들이 있습니다. 상사는 그것이 조직 결속력을 고취시키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하 직원들에게 그것은 단지 시간적인 손해이며 정신적인 손해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손해는 분명한 손해이지만 없는 셈 쳐지는 손해입니다(그런데 사실 이런 암묵적 손해들이 쌓이는 것이 조직 결속력에 오히려 해를 미칠 수 있죠).

   누군가가 실수를 저질러서 우리에게 손해를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팀을 이루어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팀원 중 하나가 어떤 실수를 하면, 그 실수의 여파는 팀원 전체에게 미칩니다. 그럴 때도 우리는 손해를 봅니다.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도 우리는 손해를 입을 수 있죠. 위의 예처럼, 실수를 통해 손해를 보기도 하고, 앙심을 통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손해를 입게 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 길을 봅니다. 이해의 길과 원망의 길을. 혹은 용서의 길과 복수의 길을.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나는 나의 이해와 용서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경우, 나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을 가졌습니다. 첫째는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이 나에게도 있다.’는 생각입니다(반대로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 나도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저 사람에게 이 일의 모든 원인이 있다.’는 생각은 원망과 복수심을 낳았습니다). 첫 번째 생각부터 살펴볼까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매번 그러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내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에유, 저 사람도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려는 편입니다. 저 사람이 완벽하지 못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저 사람이 하필 오늘 내 앞에서 실수를 한 것도 그냥 그런 일 같아집니다. 저 사람이 뭔가를 대단히 잘못해서도 아니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해서도 아니고, 내가 불운해서도 아니고, 그냥 오늘이 그런 날이어서 오늘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도 내 실수를 예측하지 못하는데, 저 사람이라고 자기 실수를 예측했을까요.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실수를 저지를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자각하면, 불필요한 분노가 효과적으로 잠재워지는 듯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내가 나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는데 “야, 왜 그랬냐?”, “니 일부러 그랬지?” 같은 말을 들으면 얼마나 아뜩할까요. 내 불완전이 결함이나 죄 같아서 얼마나 속상할까요. 내가 진짜로 어쩔 수 없었던 일을 어쩔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감이나 자존감 같은 것이 무서운 속도로 위축됩니다. 내 최선이 명백한 노력의 부족으로 읽히는 상황에서 사람의 정신은 얼마나 깎여 나갈까요.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이상 나는 아무에게서도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은 그런 상황들의 연속에서 싹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점점 더 많이 수용할수록, 누군가의 실수를 점점 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완벽하길 바라니까 그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누군가가 실수하면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점을 나는 깨우쳐 나갔습니다.

   이제는 두 번째 생각을 살펴볼까요.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이 나에게도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할 때, 누군가의 실수가 그 사람만의 실수인 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성냥 탑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성냥 탑은 좀 부실합니다. 세 명의 아이들 모두 어떻게 하면 성냥 탑을 견고하게 쌓아 올릴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아이가 올린 성냥 한 개비 때문에 성냥 탑이 문득 균형을 잃고 무너집니다.

   명목상으로는 그 아이가 실수를 했고, 그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성냥 탑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성냥 탑 붕괴의 원인이 그 아이의 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체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고 원인도 그와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성냥 탑이 무너지기 직전에 올라간 성냥개비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 성냥 탑의 건축 과정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의 책임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책임은 져야 하니 제일 책임 많아 보이는 사람을 지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기보다는, 책임이라는 것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태의 본질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사람은 이해와 용서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 ‘내가 가진 당위성(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마음들)’이나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선시되면, 나는 이해와 용서에서 멀어집니다.

   과거에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현실을 안 보려고 하니까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현실을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과 진실이 아닌 나 하나만 볼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이해와 용서였습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