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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관심의 힘두 분의 선생님을 멘토로 모십니다.

제 삶에 영향을 주신 분들 중에서 두 분의 선생님은 빼놓기 힘들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들의 관심어린(?)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 분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습니다.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아예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옛말에 '이웃이 장에 간다카이 똥장군 메고 장에 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에게 있어 학교를 간다는 것은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관심이 아예 없다고 하더라도 시험 기간에는 조금은 신경쓰게 마련인데 저는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그런 부류도 아니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수많은 학생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제 말 한마디로 존재감이 없게 되어버려서..정말 미안~~

중학교 3학년 때 실업계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대구에 있는 공고 중 한 학교에 원서를 냈었습니다. 결과는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당시 그 학교가 커트라인이 아주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았는데... 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네요. 제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커트라인이 아주 낮은 학교 밖에는 없었는데.. 그것마저 욕심이었네요.

저의 모교입니다. 단풍 든 은행나무가 보기에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닐 때에도 은행나무가 있었는지.. 아! 치매인가? 기억이 안나네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고향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실업계에는 떨어지고 인문계에는 합격한 아이러니?  저는 그 학교의 3회 입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모교는 학생을 대구에서 모셔와야 했습니다. 입학 정원을 채울 수가 없어서.. 한 반에 60명 정도였는데 1학년 전체 학급은 6학급, 그 중 한 학급은 거의 대구에서 온 친구들이 차지했습니다.

1학년 때 특설반이 있었습니다. 1등부터 50등까지는 특설반에 배정이 되고, 여학생 반이 한 학급 따로 있었고, 나머지 3반부터 6반까지는 보통 반 배정하는 것처럼 입학 등수대로 돌아가면서 학급이 정해졌습니다. 저야 물론 당연히 3반에서 6반 사이의 어느 한 반이었습니다.

저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주신 두 분의 선생님...

두 분중  한 분은 영어선생님이셨습니다. 이 분이 저를 좋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발단이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급 전체가 책상 위로 올라가 꿇어앉고 매로 허벅지를 맞게 되었습니다.  제가 맞을 차례가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너 잘못은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학습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으로서 1학년을 맞이한, 선생님으로서 신입생이셨는데 참으로 단아한 이미지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소식을 전혀 몰라서 안타깝네요.

지난 스승의 날에..

또 한 분은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 얼굴을 몰라봐서 쩔쩔맸던 그 선생님이십니다. 이 분도 영어선생님처럼 선생님으로서 1학년이셨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시고 고등학교로 오셨는데 저에게는 운이 좋게도 담임선생님이 되셨습니다.

1학년 2학기 어느날, 종례 시간에 제가 딴 짓을 하느라 선생님 말씀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옆 친구에게 '무슨 말이고?'하고 물었는데 선생님이 그 말을 들으셨나 봅니다. 선생님이 '야! 그 뭐고?'라고 물으셨는데 친구가 '알짬e'라고 대답을 했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저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까지 존재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삶을 살았으므로 선생님에게 지목되는 것 조차 억쑤로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어! 그래?'하고 넘어가시는 겁니다. 최소한 분필이라도 날아왔어야 하는데..

1학년 2학기에는 공부에 조금 관심을 보이고 있던 시기라, 최소한 '공부를 해야된다'라는 생각은 하고 생활했던 터라 선생님께서 쿨하게 넘어가 주신 것이라 그 때는 생각했습니다.

이 두 장면 모두 별달리 큰 사건은 아닙니다. 그저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두 선생님의 그 행동이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시골에서 여름이면 소먹이러 뒷산에 가야했고, 모내는 날이면 모를 날라야 했고, 가을이면 나락을 베어야만 했던 시골 머슴아에게 관심을 가져 주신 최초의 선생님이셨습니다.(최초의 선생님이라고 한 것은 형님이 한 분 계시는 데 그 형님이 저에게 엄청 신경을 써 주셨거든요. 안 되는 동생 엄청나게 답답해 하면서.. 서울에서 살고 계시는 데 이번 주말은 형님 뵈러 가야 하네요.)

이 두 장면이 제가 그나마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게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 진학은 못했지만(재수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최초로.. 이후로 조카 몇이서 재수를 했습니다, 제가 그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그 정도의 성과도 두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두 분 중 담임선생님은 이번 여름, 선생님이 쉬실 때(방학이 되면) 한번 찾아뵈어야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그리고 읽어주신 메이벅스님들께) 고맙습니다.

 

 

#관심#학교#성적#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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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초나라(kjkyj)VIPVIP 2019-06-22 01:48:31

    알짬e님께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셨군요.. 이글을 통해서 저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아쉽게도 없네요 ㅠㅠ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6-21 11:17:36

      인생을 바꾸거나 진로를 바꾸는 일에는 큰 사건이 필요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딱 그 때의 내 마음 상황 불안 이런것들이 사소한 감동을
      만나 번개처럼 반짝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뭐고? 알짬e, 그런데 알짬e가 뭐에요.^^ 궁금했습니다.   삭제

      • 박다빈(parkdabin)VIPVIP 2019-06-21 10:13:17

        어렸을 때 들은 말들은 정말 크게 다가 오고
        깊이 틀어박히는 것 같아요.
        저도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 덕분에
        인생의 결이 완전히 바뀐 경험을 했습니다.
        스승이 왜 있는지, 왜 있어야 하는지
        너무 절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드네요. ^^   삭제

        • 윌비리치(lswlight)VIP 2019-06-21 09:48:50

          저도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가슴속에 있는데요.
          지금 너의 이 순간의 한글자가 미래의 와이프의 얼굴을 바꾼다   삭제

          • Tanker(icarusme)VIPVIP 2019-06-21 03:48:01

            저도 고3때 담임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데 이제는 안계시는 거 같아요.
            독일어 선생님이셨는데 조용하고 온화한 선생님이셨죠.
            지금은 나이가 꽤 되실텐데 잘 계시겠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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