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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왜 '산은 인생의 도장'이라 말했을까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산악계 대부'라는 이인정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이렇게 기고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산은 인생의 도장(道場)’이라는 말이 있다. 
 
'예부터'라니, 과연 언제부터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궁금해하면 그게 궁금할 꺼리이기도 한데,
다행히 한국에는 세계 유일의 등산박물관이 있어 정확히 그 탄생시기를 비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구에서 자아실현, 호연지기와 같은 조선스러움이 느껴지는지 아니면 사무라이와 같이 비정함과 3대째 내려오는 우동집같은 결기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전자로 받아들이지만 원래는 상당히 일본스럽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북한산 도선사 소장

"산은 인생의 도장"이라.

지금은 밋밋하지만, 그때 그시절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경전구절인양 각인되어 심금을 울렸다. 1970년 전국의 명산에 세운 산장 35동마다 대통령 박정희가 내린 이 휘호가 걸려 있었고 산을 바라보는 우리의 '고리타분한'(?) 멘탈리티하고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휘호에는 이런 일화가 숨어 있다. 

1970년에서 1971년에 걸쳐 민주공화당에서는 전국의 유명한 산에 청소년들을 위한 산장을 세우기로 하고 이를 대통령께 건의, 모두 35채를 지었다. 이때 산장마다 내걸 글을 대통령의 휘호로 써줄 것을 부탁한 것이 '산은 인생의 도장' 이라는 것이었다. 

 

이 일화를 기록한 이는 당시 공화당 선전부장 직을 맡으며 산장 짓기를 주도한 김영도 선생님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신뢰도가 높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1970년 12월 20일 박정희가 써고 다음날인 12월 21일 북한산 우이산장이 개관하면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박정희는 과연 어떻게 이렇게 근사해 보이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노래도 잘 짓고, 그림도 잘그리고. 작명까지 잘하다니... 

문외한이라 자신할  순 없지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니 하는 식의 은유적 표현은 한자문화권의 언어습관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도 적절한 검색어를 넣지 못해 그렇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인생의 도장"이라고 넣고 검색하니 1954년에 바둑을 '인생의 도장'이라고 비유한 게 눈에 띤다. 그리고 또 한차례 더 등장한다.

1954년 바둑, 1970는 산에 이어 1993년 동아일보에 "증권회사의 객장은 인생의 도장"이다라는 똑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이 말을 한 이는 1919년생으로 일본에서 중학과 와세다대학을 나오고 서울대 상대교수와 2공화국때 차관을 지낸 김용갑이다.

그리고 1920년생으로 김형석 교수와 함께 언급되던 고 안병욱 교수는 와세다 대학출신으로 80세를 맞이하여 '인생은 도장이다...자기완성을 위하여 쉬지말고 전진하자'라는 을 남겼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도장'이라는 게 이미 일본 교육을 받은 이들에겐 공공연한 언어수사가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 '절제', '수행', '허욕', '정좌'등에서 출처가 일본일거라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제 우리의 구글로 잠입취재(^^)를 해보자. 구글없던 시절은 등산학에 있어서도 '구석기시대'와 진배없다.

"は人生の道場"로 검색하니 쏟아진다.

'직장은 인생의 도장이다. 술집은 인생의 도장이다. 야구장은 인생의 도장이다'로부터,

 '편의점은 인생의 도장이다' , '스포츠는 인생의 도장이다'라는 말까지...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것에다 '인생의 도장'이다를 넣으면 뭔가 일본스러운 표현으로 완성된다. 

길거리 우동집을 하더라도 3대를 내려가고, 기껏 주먹밥을 만들어도 주먹밥에 들어가는 쌀알 갯수가 똑같다느느니 하고, 어느 호텔 슈사인 할아버지는 외국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어느 호텔 슈사인 할아버지에게 자기의 구두를 맡긴다고 하고.

이제 기승전'산'으로 산은 인생의 도장에 해당하는 "山は人生の道場"를 구글에 넣어보자.최근에 개설한 한 트위터가 같은 표현을 쓰고 있고, 의외로 몇몇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일본의 산악계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경구는 아닌걸로 짐작된다.

1989년에 이와자키가 '등산입문가이드'에서 같은 표현을 했다 하고, 1968년 산과계곡사에서도 그런 표현이 나올 뿐이다. 의외라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잠정적은 추론은 이렇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만주 군관학교 그리고 일본 육군사관학교 등 일본 제국주의에서 가장 깊숙히 들어가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다.  '인생의 도장'이라는 건 그시절부터 익숙한 용어였고 어쩌면 그의 신조였을수도 있겠다.

그리고 '산은 인생의 도장'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그리 흔하게 들리는 말은 아닌걸로 짐작한다. 박정희는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산'이라는 주제어와 십대 때부터 알고 있던 '인생의 도장"을 결합시켜 그 시절 우리를 설레이게 했던 문장을 독창적으로 창작해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문장은 한국 양반들이 조선시대때부터 품고 있던 '호연지기'나 '자아실현'류의 한가로운 입담이 아니라, 원래 일본에서는 매일매일 일상에서 자기의 업과 결부시켜 나오는 느낌의 결기가 느껴진다.

조치훈이 '목숨을 걸고 둔다'라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서두에 이인정이 '예부터'라고 하였으나, 그때는 구글이 없던 시절이니 왠만한 건 '전설'이 되었겠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의 휘호 하단에 1970년 12월 20일이라 적혀 있으니, 이 날짜가 바로 이 문구가 고고성(呱呱聲)을 울린 날이라는 걸 알게 되시겠다.

 

이상 '산은 인생의 도장'이라는 경구에 관한 잡설이었습니다.

 

 

 

 

 

 

덧붙여) 

이런 게 궁금해진 건 실마리가 있어서이다.

스기야먀 토미는 1921년 한국에서 태어난 자이니치자포니즈였다. 그녀는 경성여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의 전신)에 입학했는데, 경성여사범의 교훈은 놀랍다. 우리처럼 '근면, 자조'이런 수준이 아니다.

총 3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조의 처음에 '학교는 인생의 도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둥둥.. 가슴이 호기심으로 뛰기 시작한다.

 

여기서 일제시대때 '인생의 도장'이라는 말이 널리 유행되었음을 짐작하고 박정희의 저 경구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만있자. 박정희도 대구사범학교 출신이니 혹시 그 학교 교훈도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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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장고(atom747)VIP 2019-07-19 14:54:51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산과 관련해서 시리즈물로 포스팅하는 것들 잘읽고 있습니다
    인자요산 지자요수라고 했듯이 큰자는 확실히 산을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19-07-19 14:13:10

      도장이라는 말이 당연 무사들을 많이 배출한 일본의 정서가 맞다고 보입니다.
      무술도장 도를 닦는 장소라는 것이니 어원을 찾지 않아도 될듯합니다.
      그시대에 일본유학생들이나 군관학교 출신이라면 당연이 사용할 단어일 것이라 봅니다. 배운대로 하지요.   삭제

      • 윌비리치(lswlight)VIP 2019-07-17 22:40:39

        산은 인생의 도장.. 매우 내용이 심오하면서도 어렵군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작성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잘봤습니다.   삭제

        • 난초나라(kjkyj)VIPVIP 2019-07-17 20:25:03

          등산박물관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산에 대한 지식이 정말 많으셔서 부럽습니다.^^ 좋은 글에 후원드리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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