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앞 신고서점 - 30년 넘게 아직도 있네요>

어릴 때 뒷집에 살던 꼬마아이 동구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 녀석이 저를 참 좋아했는데 저는 키 작고 볼품없는 걔가 싫어서 너무 새침하게 굴었습니다. 많이 미안했는지 어른이 돼서도 가끔 생각나네요. 그거 말고는 어릴 때 도둑질 같은 걸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도둑질은 아니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쯤 일인데 옛날엔 서점이나 도서관보다 동네 헌책방에 자주 갔습니다. 책을 팔기도 하고 사보기도 했었죠.

그날도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겉표지가 연분홍색의 예쁜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목차를 보고 책을 휘리릭 넘기면서 훑어보는데 빳빳한 만원짜리 새 돈 한 장이 끼어있었습니다.

못 본 척 덮고 책은 손에서 놓지 않고 다른 책을 둘러보며 엄청 망설였습니다. 두근두근하며 이걸 가져가도 되나? 주인아저씨에게 말해야 되나? 사다가 들키면 어떡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다른 책과 함께 그 책을 내밀었습니다. 무사히 책값을 치르고 만원이 끼어있는 그 책도 집에 가져왔습니다. 책 제목도 기억이 안 나고 그저 예쁜 책이었고 두근두근 했던 기억만 납니다.

이걸 내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서점아저씨한테서 훔쳐온 건지.. 서점아저씨도 누군가에게 헌책을 샀을 뿐이니 서점아저씨 것이 아닌 것도 같고.. 어쨌든 알면서도 모른 척 가져온 거니 나쁜 짓을 한 것도 같고 그랬네요.

어릴 때 이런 만원의 행운은 딱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에 골목길을 가는데 남의 집 담벼락 앞에 흰 연탄재가 잔뜩 쌓여있었는데 그 사이에 눈에 띄는 뭔가가.. 쪽지처럼 접힌 만원짜리 한 장이 연탄사이에 끼어있었습니다. 

낼름 집어 들고 튀었습니다. 훔친 건 아니지만 떳떳한 얘기는 아닌 것도 같은데 그 상황에 그거 안 집어올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

은빛태양을사랑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