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충실토록 명하시고,

그들에게 또한 보다 따뜻한 이들을 주시옵소서.

강한 포도주에 마지막 감미를 넣으시옵소서.

지금 집 없는 자는 어떤 집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외로운 자는,

오래도록 외로이 살 것입니다.

잠 못 이루어,

책을 잃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잎이 지면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곳저곳 헤맬 것입니다.

릴케 : 체코의 프라하에서 예비역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육군 유년 학교를 5년간 다니다 중퇴하고 프라하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적 재질을 발휘했다. 그가 21세 되던 해부터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여 <<가신봉폐>>, <<꿈의 관>>, <<강림절>> 등의 시집을 2년 사이에 발간했다. 이후에 그는 러시아를 두 번 여행하는데 이여행의 체험은 그의 초기 시에 서정적 감상과 우수 그리고 종교적 분위기를 갖게 했다. 귀국 후 그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상시집>>과 <<기도시집>>을 냈다. 1902년 파리를 방문해서 로댕을 만나고 이후 4년간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로댕의 화실을 드나들었다. 이 때 그는 예술적 조형력과 신비를 깨닫고 사물의 내적 본질을 꿰뚫는 내적 인상주의의 한 시기를 이룬다.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방랑하다가 클라라를 만나 결혼하였다. 이후 애도 방랑은 계속되었으나 이 때 <<조형시집>>, <<신시집>>등,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시집이 나온다. 몇 년 후에 파리 생활을 바탕으로 한 유명한 소설 <말테의 수기>가 쓰여 졌고, 그 이후 작품이 뜸하다가 <두이노의 비가>와 <올포이스에게 부치는 소네트>를 발표하고 몇 년 후에 장미꽃 가시에 찔러 죽었다. 그가 만년에 발표한 두 작품은 그의 문학을 결산하는 압권이라 할 만하다. 릴케는 독일 문학사상 엄밀한 의미의 현대시를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가을날」은 릴케의 시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 중의 하나다. 릴케의 시에는 자주 신이 등장한다. 그의 신은 어두움의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신은 그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의지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 시에서는 자연과 인간에게 힘을 주는 또 축복을 주는 존재로서의 신을 경건함을 가지고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