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면에서 우유부단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유부단(優柔不斷)은 ‘어물거리거나 망설이며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문자 뜻 그대로 풀면 ‘인정이 후하고 심성이 부드럽거나 물러, 결단을 내리지 못함’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아무리 주체적인 사람이어도, 살다 보면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얼른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 그런 문제를 맞닥뜨린 순간에 그는 우유부단해질 수 있고, 그것은 그의 흠이 아닙니다. 잘못도 아니구요. 그런 순간이 그의 인생에 대단한 흠집을 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유부단함이 일상적인 태도가 되어 버리는 것은 그의 인생에 별로 도움 되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가 자칫하다가는 그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유부단함 때문에 사람이 팔랑귀가 되면요.

귀가 쉽게 팔랑거리는 모양을 상상하며 만든 단어인 팔랑귀는 ‘줏대 없이 여러 사람들 의견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저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귀가 저쪽으로 팔랑거리고, 이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귀가 이쪽으로 팔랑거리고.

팔랑귀는 남들 말에 자주 혹합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할 때마다 ‘그런가?’ 싶어 하는 것입니다. 팔랑귀는 육체의 귀에서 들어오는 소리에만 신경을 쏟습니다. 육체의 귀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팔랑귀에게는 소신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독자적으로 믿는 무언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팔랑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첫째, 남 이야기라면 무조건 맞다고 철석같이 믿는 부류. 둘째, 남 이야기도 좀 미심쩍지만 어쨌든 남의 의견을 따르는 부류.

팔랑귀에게 자기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견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구요. 그는 자기 생각이 보잘것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남들 생각에 비하자면 내 생각은 보잘것없는 거야.’), 절대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내 생각 따위가 뭐가 중요해?’). 그는 자기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벽과 기준 충족을 요구하는 마음. 에고에서 나온 마음입니다. 자존감이 부족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배려와 다릅니다.

내 의견이 일단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의견을 따라 주는 것이 건강한 배려입니다. ‘저 사람 말이면 무조건 맞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상대의 의견을 따라 주는 일은 건강한 배려일 수 없습니다.

상대가 내린 결정이면 그게 무엇이든 군말 없이 따라 주는 사람은 겉보기에 헌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대에게요.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책임져 주기를 바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 운전대를 잡고 돌려 주기를.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들까지 상대가 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서요. 본인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이렇듯, 자존감 부족은 의존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굴 만날 때 주로 통제하는 편인 사람과 주로 의존하는 편인 사람이 만나면, 그 관계가 오래 이어질 수 있습니다. 쿵짝이 잘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래 이어지는 관계 모두가 건강한 관계인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다만 자기 몫을 하며 지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건강한 각각의 두 사람으로서 하나의 관계에 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선택은 우리 자신의 행복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타인의 판단은 타인의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고, 타인은 어쨌든 타인이어서, 그는 나의 입장을 자기 입장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에게 여러 조언을 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때로 덜떨어져 보이거나 못미더워 보여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일 잘 아는 건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요.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중대사를 처리할 때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조언을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손길과 충고가 ‘결정적인 무엇’이 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타인의 견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귀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견해가 우리의 견해를 대체하지만 않는다면, 타인의 도움을 받는 일은 우리에게 아주 이로운 일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자동차 엔진을 바꾸거나 내비게이션을 바꿀 수는 있지만, 운전자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불완전과 미완성으로 가득한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사람이 자기 운전대에 진득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운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꽉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자기 인생이 자기한테 최소한은 괜찮아야, 그 인생에서 직접 뭘 해 보겠다는 의지를 일으키게 되는 것 아닐까. 마음 붙일 수 없는 일은 어떻게 되든 솔직히 상관없으니까요.

더럽거나 안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만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인지상정인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정의하고 느끼는 방식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어야, 본인 인생을 직접 운행하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 운행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억지춘향이가 되어서는 무엇이든 오래 할 수가 없으니까요.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