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면서 아주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몇 천 장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수많은 편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쓴 만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되돌아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생일 때 받은 편지들보다 아무 때도 아닌 때 받은 편지들이 더 기억에 남지만, 생일 때 받은 편지들도 제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떠오르네요. 

제 생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그 사람은 저에게 온갖 질문을 던졌습니다.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때 저는 그게 단순히 놀이 같았습니다. 거기에 별뜻이 있다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제 생일이 되기 직전의 주말, 그 사람이 만나자고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 집 근처 카페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 사람은 종이 가방을 들고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안에서 거대한 편지가 나왔습니다. 책처럼 만들어진 편지였습니다. 그 안에 저에 관한 온갖 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편지를 다 받아 보다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 편지는 너무 감동이었고, 사실 감동보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말이 뭐가 필요한가요. 살면서 가슴 떨림을 느껴 보는 경험은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생각이 그날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누가 아무리 저에게 좋다고 해도 제가 마음이 동해야 상대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요. 참 순수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꾸준하게 마음을 표현해 준 그 사람이 저는 좋았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촛불처럼 가녀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인생의 일환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종류의 사랑, 우정, 동료애를 나누면서 저는 관계의 덧없음도 많이 느꼈습니다. 관계는 덧없지만 추억은 덧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날 그 편지를 받았던 순간의 마음이 아직도 저를 덥히고 있습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