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부령 하면 알프스 스키장이 곧바로 연상될 텐데요.

지금으로부터 45년전은 어떠했을까요?

다른나라라고 해도 좋을 그때 그시절 모습을 보겠습니다.

이곳을 자주 찾는 이라면 저 봉우리가 어디인지 알겠죠. 마산일 것 같은데. 집집마다 지붕 크기만큼 눈을 소복소복 이고 있는 산촌입니다. 마을 이름은 진부령 고개마루턱 흘리 마을이고요.

하단에  두명이 마실을 가는지 눈길을 걷고 있습니다. 앞뒤 거리를 보아한즉, 내외하는 부부 사이일 것 같기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도 못하고, 내처 저만치 사이를 두고 걷던....

출처는 1975년 2월호 월간지 "세대"입니다. 설촌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아니나 다를까 사진은 산악사진계의 큰어른인 김근원 선생이 찍었네요.

자제인 김상훈 교수에 의하면, 자택엔 김근원 선생이 찍은 사진과 필름이 가득하지만 정리가 엄두가 안난다고 하네요. 뜻있는 기관에서 이 사업을 맡거나 후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눈백 하늘백 땅백한 곳을  지팡이 짚는 할머니를 앞세우고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6명인 걸 보면 일가족인 듯 합니다. 맨 뒤는 결혼 적령기의 고모로 보입니다. 어디로 갈까요. 짐작으로는 설을 맞아 산소에 가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아이들은 참나무를 깍아 스키를 만들고, 전국 스키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적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 시절 벌써 이곳에 스키장이 있었다는 겁니다. "북한의 설봉스키장과 함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스키장으로, 1980년까지는 이곳에서 각종 스키 대회가 개최되었다. 1971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보집에는 이런 '개발'에 관한 건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의 일종이겠죠. 저곳은 순진무구한 한국의 원형이라는 포맷 말이죠.

보시다시피 지붕은 초가집이 아니라 슬레트 지붕이고, 아이가 짚고 있는 스키 폴대도  명품^^입니다. 바로 위에는 '참나무를 깍아' 스키를 만든다고 하면서 말이죠...

1950년대 후반 강원도를 대표하던 강원산악회의 동계 설악산행기를 보면, 백담사 앞 용대리에 하룻밤 유숙을 하곤 했는데 그때 동네 어른들이 끓여준 국이 이렇게 잡은 산양고기 국이라고 하죠. 그시절에는 산양이 설악산에 수천 수만 마리나 있었습니다. 설악산은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다들 어디에 피신해 있었을까요.

새가 굶거나 날씨가 워낙 추우면 날아가다가 툭툭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 자락인 제 고향에도 겨울에 대문 밖에 올가미를 해 놓으면 밤새 먹이를 찾아 내려온 노루가 올가미에 걸려 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온난화로 눈이 없는 한국이 되다보니, 호랑이 담배피던 이야기인 셈이 되겠지만 말이죠.

흘리 국민학교 모습입니다.난로를 가운데에 두고 통나무를 깍아 만든 책상을 앞에 두고 초롱초롱합니다. 지금 50대 초중반이 되겠군요. 이들 중에 혹시라도 이곳을 찾을 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선물이 될테니까요.

이야기를 그냥 맺으면 재미가 덜하니, 여기서 그시절 숙제^^하나 내 볼까 합니다. 오른쪽 벽은 추위를 막을 요량인지 합판같은것을 덧대어 놓았는데요. 그 위에는 위인들의 모습이  주욱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아마 정약용. 이율곡. 김구 등은 있을테고, 맥아더, 이순신도 있군요. 저 포즈들이 저 역시 눈에 선합니다.  

이제 짧지만 아련한 시간여행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45년이 지금은 이런 모습입니다.

알프스 리조트와 광산초등학교 흘리 분교가 눈에 띠고, 펜션 사이를 가득 메운건 비닐하우스로 보입니다. 자급자족의 공동체 사회는 사라지고,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도시인들을 위한 농촌이 되었습니다. 조선 팔도 어디라 할 것 없지만 말이죠.

김창완이 노래 '청춘'의 끝에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라고 했는데, 옛동산은 이제 오직 마음속에만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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