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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빙하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은 각기 다른 생태계 안에 있다

 

 

간밤에는 빙하 세계에 다녀왔어요. 꿈속 가득 펼쳐진 빙하 세계 곳곳을 걸어 다니는 동안, 나는 내 입김이 만드는 다양한 형상들을 온몸으로 흩뜨렸습니다. 나는 혼자서 여행 중이었어요. 그 세계의 누군가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은 상황이었구요. 여행 가이드 분들은 내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그 세계 현지인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인사를 했어요. ‘ㄹ’ 발음이 많은 언어였습니다. 악수와 포옹을 스스럼없이 하던 사람들.

 

빙하 세계의 역사, 문화,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건성으로 들었어요.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머리보다는 가슴을 자꾸 채우게 되어서.

 

빙하 세계의 대부분이 빙하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그 세계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나는 그 긴 단어의 발음을 도저히 따라할 수 없어서, 나 혼자 그 세계를 빙하 세계라고 불렀어요. 물론 속으로요.

 

거기 대륙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대륙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대륙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세계 사람들 전부, 빙하 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빙하 위가 아니라 빙하 속에. 커다란 빙하들 속을 정교하게 조각해 세운 도시들.

 

도시들을 건설할 때마다 이래저래 큰 수고가 들었을 텐데, 이 도시들은 딱 9년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어요. 10년마다 빙하들이 다 녹아 버려서. 해빙기가 주기적으로 와서. 빙하가 녹는 해가 밝으면, 1월부터 거짓말처럼 평균 기온이 치솟는대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빙하들이 다 녹아 버려요. 사람들은 거대한 잠수함 속에 대피해 있구요.

 

빙하가 다 녹고 나면, 나머지 6개월 동안 새로운 빙하가 만들어져요. 그때도 사람들은 그 커다란 잠수함 안에서 살아요. 빙하들이 모두 만들어질 때까지. 여러 개의 잠수함들은 저마다 하나의 도시 같아서,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에너지를 만들고 쓰며 평상시와 크게 다름없이 살 수 있대요.

 

6개월 만에 한 세계를 이루는 빙하 전부가 다 녹고, 나머지 6개월 동안 새로운 빙하 세계가 건설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꿈속의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큰 의문이 없었어요.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싶기만 하더라구요. 꿈이라 그런지.

 

 

 

 

다음 관광 장소로 이동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이동 차량 쪽으로 걷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감정도 빙하 같다. 형태를 이루어 어딘가에 머무르다가도 어느 순간 녹아서 흘러 버리며, 끊임없이 그 형태를 달리하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가슴 안에 감정의 빙하 세계를 품고 있다. 행성들의 기후가 모두 다르듯, 빙하 세계들의 기후도 모두 다르다. 따라서 각 빙하의 녹는점, 녹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더 낫고 더 못한 것은 없다. 취향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을 가를 수는 없는 문제다. 아프리카의 기후가 히말라야의 기후보다 절대적으로 낫거나 옳다고 할 수 없듯이.

 

어떤 일들에 대한 내 감정이 오늘 다 처분되었다고 해서, 상대 또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에 관한 한 너무 빠르거나 늦은 변화는 없다. 모두가 제 속도로 자기 감정을 수습하며 살아간다.

 

꿈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억나는 꿈은 이 꿈뿐이었어요. 일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어요.

 

타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감정의 빙하 세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기후를 가졌는지, 나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영영 확인할 수 없는 세계예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타인이 그때그때 발산하는 감정들뿐이에요. 그마저도 내가 100%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내 관찰력에는 한계가 있고, 누구나 자기 감정을 다양한 수준으로 감출 수 있으니까.

 

그동안 나는 내 눈에 보이는 타인의 감정만 존중했던 것 같아요. 그게 전부라고 착각해서. 보이는 전부가 존재하는 전부라고 착각해서.

 

타인이 표현하는 감정이 그가 느끼는 감정의 전부라고 오해했기에, 그에 대한 내 존중은 얄팍했고, 내 존중이 얄팍할수록 상대는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의도한 게 아니더라도) 내 무신경함 때문에.

 

 

 

 

“내가 니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으로 시작되는 말에 깊은 위안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구요. 내 감정의 심층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는 사람의 말은 미사여구 없이도 내 마음을 충분히 다독거립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감정 빙산의 일각을 잘 살펴 주는 사람도 물론 고맙지만요. 힘이 되고 의지가 되지만요. 내가 오늘 드러내 놓은 감정이 무엇에 대한 내 감정의 전부일 수 없음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 나는 번번이 치유를 받습니다. 다친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물어지는 내 마음을 봅니다.

 

 

ⓒ 카쿠코 매거진, 박다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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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비솔99(rose3719) 2019-11-11 10:01:06

    어릴때는 감정이라는 변화들이 단순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감정의 변화들이 다양해 지는것 같아요. 오늘도 다양한 감정의 변화들을 겪으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이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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