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잘 키워준 선임, 그녀가 있었기에.

입사해서 착한 선배를 만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회사는 일에 있어 인정받아야 하는 공간이다. 성과를 내고 일을 잘 해냈을 때 내 입지도 높아진다.

일을 잘하는 선임이 있으면 그 밑에서 뭘 주어도 줍게 된다. 그런 선배가 있었다.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선뜻 애교부리며 다가갈 수 있는 포스는 더더욱 아니었다. 차갑고 냉정해보여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초반에 나는 일에 적응하기까지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뭘 알아야 누구에게라도 물어보려고 접근할 텐데 아는 게 없으니 더 뻘쭘했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도 한몫했다. 다른 이들은 눈치껏 만만하거나 편한 사람에게 물어물어 편하게 가는 통로를 열어갔다.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는 모두 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독 시선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신입이 들어오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선임이었다. 그 선임은 주위에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자신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그 선임의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일에 대한 이해 없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잘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에만 몰입한 모습에 시선이 자꾸 갔다.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잘했다. 그녀는 힘 하나 안들이지 않고 일을 매끄럽게 헤치웠다. 일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 그 선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 처리 하는 방식을 관찰해 비교해 봐도 그 선배는 남달랐다. 아는 게 있어야 보는 눈도 어느 정도 생기는 거다.

일 잘하는 선임은 일하는 데 있어 막힘이 없고 당당한 행동을 보였다. 그녀는 멀티플레이처럼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언제 저 위치까지 간단 말인가?

난 그 선배를 유심히 관찰하며 무엇 하나라도 배우려고 애썼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힐끗힐끗 그녀의 일 처리 하는 방식을 훔쳐봤다. 그녀에게 다가가 가르쳐달라고 하기도 방해가 될 것 같아 망설였고, 그녀가 다감하게 가르쳐 주는 것도 아녔다. 그런 내마음을 눈치챈 건지.

한 달쯤 지났을까? 나를 지켜보던 그 선배가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을 터치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효율적이지 못해."라며 지적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일을 가르쳐 줬다. 하지만 다정다감과는 멀었다.

잘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긴장됐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좋았다. 뭔가 물꼬를 튼 것 같아서,

말 붙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선배에게 세 번을 망설이다 한 번쯤은 용기내 가서 묻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배의 지적은 점점 날카로웠다. 한편으로는 기가 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기가 발동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일의 흐름이나 방식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나니 각자 일하는 스타일이나 방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더 효율적이네, 저 사람은 꼼꼼한데 좀 느리네. 저 사람은 일 처리가 정신없네.' 등 나름대로 평가를 속으로 할 정도가 되었다.

그 선배에게 열심히 혼나면서 터득한 걸 응용하며 일을 숙지했을 때 나도 매의 눈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역시 선배처럼 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그게 곧 실력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어 준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그냥 너 알아서 배워, 나도 누가 가르쳐 준 거 아니야. 나 스스로 터득했어.' 하면서 신입사원을 귀찮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정말 잘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잘 챙겨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상냥하고 친절한 선임이다. 신입생에게 마음 써주는 마음씨 좋은 선배 말이다.

착한 선배들도 하루 이틀은 잘해 주어도 지속해서 챙겨주는 사람은 드물다.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씨 좋은 선배처럼 다정하게 다가와 일일이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정하게는 아니어도 꾸준히 가르쳐 준 것에 감사한다.

무신경한 직장 선임들 사이에서 혼자 일을 익히느라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편한 길을 가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잘 만난 선임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그 당시는 선임이 그저 무서웠지만, 훗날 그녀로 인해 내 위치가 달라졌을 때 알게 되었다. 그때 호되게 해준 선배로 인해 내가 급성장했다는 걸 말이다.

머리가 똑똑하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니다.

소위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을 넘어서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주장이 강하고 편파적이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방식을 수용하는 데 있어 열려 있지 않은 편이다. 일하는 스타일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본인만 잘하면 된다는 건 일을 완벽하게 숙지해서 남의 도움이 필요 없을 때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다. 재수없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당당함이라고 본다. 그 선배의 위치가 그랬다.

그 선임에게 재대로 배웠기 때문에 내가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일도 바쁜데 생짜 신입을 일일이 챙겨주기란 웬만한 인내력과 마음이 있지 않으면 어렵다.

그 선배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최대의 효과를 내는 비결들을 나에게 많이 전수해줬다.

다감하지 못한 선배에게 그때는 서운했지만, 나중에 선배가 없는 빈자리가 크다고 느꼈다.

선배가 떠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성장했다는 걸 피부로 와닿을 때 나는 생각했다. 선배가 내게 보석 같은 존재였다는 걸,

내게 보석 같은 시간을 내주며 날 키웠다는 걸.

선배가 말은 무섭게 했지만 그래도 모른 척 외면하지 않고 다가와 일일이 지적하며 가르쳐준 것 자체가 힘이 되었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어색한 환경에서 신입사원들이 얼마나 뻘쭘하고 마음속에 그늘이 져 있겠는가?

솔직히 신입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크게 관심 가지지 않는다.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이도 눈에 띄고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도 있다. 누가 다가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들도 자기 거 하느라 바쁘다. 신입에게 다가가 자세하게 가르쳐 줄 여유가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신입 때도 저랬을까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틈틈이 시간을 할애해 신입생들에게 그냥 토닥토닥해주는 선임보다는 업무상 노하우를 알려준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하니깐 시간도 절약되고 실수도 적게 하고 능률적으로 됐어. 참고해서 너에게 맞춰. 내가 꼭 옳은 것 아냐?'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그 선배에게 배운 것이다. 그렇게 다가와 가르쳐 주던 선배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다.

그 선배가 말했었다. 하려고 하는 모습이 이뻐서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선배가 그랬듯이 나 역시 열정적인 신입생에게 내가 가진 노하우를 나누어 줄 수 있어 좋다. 회사는 사람과의 관계도 요령이 필요하지만 일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그런 요령을 전수해준 선배에게 종종 감사할 때가 많다.

송이든

#직장 선임 #비결 #신입생 #요령 #일 처리 방식

트윗하기

송이든의 다른 포스트 보기

I love this posting (Send do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