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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꾼과 바람잡이

 

 

나에게는 항상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바람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누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자기 고충을 털어놓을 때는, 몸에 힘까지 주고 그 생각을 했다.

‘바람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중국 노름 중 하나를 야바위라고 한다. 가장 흔한 야바위는 작은 컵 서너 개로 하는 야바위다.

 

낡다 못해 부서져 내리는 골목길 구석을 떠올려 본다. 골덴 비니 같은 걸 쓰고 있는 사람이 작은 밥상 같은 걸 가져다 놓고, 그 위에 도자기 술잔 세 개를 엎어 놓는다. 야바위꾼이다.

 

야바위꾼이 바지 주머니에서 황금색 구슬을 꺼낸다. 그리고는 가운데 컵 안에 그 구슬을 넣는다. 야바위꾼의 거친 손이 가운데 컵을 흔든다. 컵 안쪽 면에 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야바위꾼이 정체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이들이 야바위꾼의 출현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야바위꾼이 골목 끝에서 모습을 보이기 전부터 야바위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바위꾼이 컵 세 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슬 부딪치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컵 세 개가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제법 현란한 손놀림이다.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주머니 사정이 좋아 보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형편이 좋았더라면 애초에 그런 골목을 기웃거리지 않았을 테니까.

 

피로인지 가난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인지, 어떤 것에 찌들 대로 찌든 얼굴을 한 이들이 야바위꾼의 개업을 내려다본다. 코를 크게 훌쩍거리던 사람이 야바위꾼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야바위꾼은 태연한 체하며 가운데 컵 밑에 들어 있는 황금색 구슬을 사람들에게 슬쩍 보여준다. 첫 판이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사인이다. 사람들의 눈이 가늘어지고, 지폐 몇 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숨을 죽인다.

 

손놀림만큼 화려한 야바위꾼의 멘트가 시작된다. 멋모르고 노름판에 들어온 듯 보이는 어수룩한 사람이 돈을 따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돈을 딴 사람이 눈동자를 빛내며 다음 판, 그 다음 판에도 돈을 건다.

 

 

 

 

자기도 돈을 걸겠다며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야바위꾼은 그 어떤 것에도 무심한 체하며 컵을 계속 돌린다.

 

이제 야바위꾼의 실력 발휘 시간이다. 황금색 구슬이 들어 있는 곳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야바위꾼은 다양한 속임수를 이용해, 사람들이 구슬을 찾지 못하도록 만든다. 어떤 경우에는 모든 컵 안에 구슬이 없다. 야바위꾼이 구슬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노름 초반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정신을 차려야겠다며 자신의 얼굴이나 정수리를 아프게 내려친다. 그런 뒤, 새롭게 시작되는 판 위로 지폐를 내민다.

 

어떤 경우, 야바위꾼에게서 처음 돈을 따낸 이가 야바위꾼과 한패이기도 하다. 사기꾼과 합심하여 타인에게 바람을 넣는 사람. 타인의 얼을 빼 놓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바람잡이라 한다.

 

남에게 얼토당토않은 조언을 일삼는 행위, 남의 고민을 섣불리 해결해 주려고 여러 말을 보태는 행위 모두 바람잡이의 행태라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바람을 집어넣는 일이라고.

 

타인에게 바람을 넣는다는 건, 그를 부추기는 일이다. 그의 마음을 들쑤셔서 그가 무슨 일을 하게끔 유도하는 일.

 

 

 

 

조언助言은 돕는 말이다. 충고忠告는 진심으로 타인을 타이르는 말이고. 충忠은 마음心 한가운데中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럽고 참된 마음이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돕고자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내 입맛대로 움직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람을 넣는다는 문장을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리 한 구석을 채우는 상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충동질하자마자, 충동질을 당한 사람 몸속으로 실제 바람이 주입되는 상상. 풍선처럼 부푼 그 사람은 공중으로 뜬 다음 어딘가로 날아간다. 그것은 그의 의사와 별로 상관없는 비행이다. 그에게 들어간 바람이 빠지고 그가 착지한 곳은 그가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그는 불구덩이나 바다 한가운데, 빙하 꼭대기에 추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에게 바람을 넣은 사람은 그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의 재난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바람잡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그 모든 건 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하면서. 타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 대한 책임을 모두 회피하는 것이다.

 

바람잡이를 법으로 구속할 수 있는 방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동질을 당한 사람의 재난은 오래도록 그의 삶을 구속한다. 그러니 이런 말은 아무리 되뇌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바람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람잡이를 잘 알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본인이 본인 스스로에게 바람을 넣는 경우도 있다.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 걸 보고 거기에 현혹된 나머지, 스스로를 부추기는 경우.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게 좋은 거라고.

 

그런 경우에 바람잡이는 본인 한 사람뿐이다. 그가 여러 곳에 책임을 묻고 다녀도, 그의 실패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마음에 바람이 들어오면, 사람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오죽하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란 말이 생겼겠는지. 실제로, 들뜬 마음을 보고 거기에 바람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수준으로든 흥분한 사람은 흥분한 표가 난다. 그러니 가급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일이다. 어떤 바람이 어디로 들어가려는지, 들어갔다면 얼마나 들어갔는지, 놓치지 않도록.

 

이것은 설렘 없이 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얄팍한 쾌락과 건강한 설렘을 잘 구분하며 살겠다는 일종의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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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니베타(ai1love)VIP 2019-12-09 13:47:52

    바람잡이 라는 단어 자체에서 ...
    사람 손으로는 잡을수 없는 바람을 잡아야 하는 굉장히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같은 느낌이 드네요 ㅋㅋ
    마치 "마왕을 물리쳐야 하는 용사"처럼...
    해내기 어려운... 그런 일을 해야하는 사람의... 느낌?   삭제

    • 알짬e(alzzame)VIP 2019-12-06 14:27:18

      남이 저에게 바람을 넣은 경우는 핑계라도 있지, 스스로 바람을 넣운 경우는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혼자 삭여야만 하니 쓰라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제 스스로도 스스로 바람 넣어 일을 그르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19-12-05 21:04:58

        바람잡이는 되지말자, 야바위꾼에게 빠져서 시골에내려가 여비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입니다. 조금 빠르죠?
        그날 끝까지   삭제

        • 썬데이모닝(sundaymorning)VIPVIP 2019-12-05 12:13:41

          바람을 잡는 다는 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 주시는 글이네요. 나도 바람을 잡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삭제

          • LUCKYMAN(fly5854) 2019-12-05 12:04:58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돈이 중심이라 야바위꾼같은 사기꾼들과 그 한패인 바람잡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납니다. 인간의 마음이 본시 사행심이 있으므로 이를 이용해 먹으려는 부류들도 분명 나타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인간들이 또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므로 강력히 처벌하는 법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삭제

            • 바람처럼(chang)VIPVIP 2019-12-05 10:27:04

              저는 야바위꾼들이나 사기꾼들, 바람잡이 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사회 현상에 더 괸심이 있습니다.   삭제

              • 은비솔99(rose3719) 2019-12-05 10:01:36

                야바위꾼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것 같네요. 예전에는 못살았는데도 왜이렇게 시장곳곳에 이런 야바위꾼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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