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겨울 방학과 여름 방학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방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던 때입니다. 저는 피아노 학원과 한자 학원을 다녔는데요. 방학 때는 학원도 웬만하면 쉬었습니다. 집이 학원과 먼 곳에 위치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학원에 가기 싫었습니다. 10시쯤 될 때까지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면 TV를 틀고 영화 채널을 틀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만화 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면요.

방학 때 혼자 끓여 먹는 라면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기껏 밥 차려 놓고 나갔다 들어왔는데 밥은 그대로 있고 라면 봉지만 쓰레기통에 있으면 어머니는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하셨지만, 그때는 라면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물론 지금도 라면을 좋아합니다. 그때만큼 자주 먹는 건 아니지만).

방학 때 방학 숙제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괴로움이 아니었습니다. 방학 숙제를 빌미로 어른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기도 했습니다. 당시 집안 어른 모두 일을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방학 때 저는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때부터 주방에서 요리를 했으니 밥 해 먹는 걱정은 없었습니다. 고기 조림이나 국수 같은 것도 혼자 해 먹었습니다.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고 사실은 조악한 수준이었겠지만, 그때는 뭐든지 해 먹는다는 게 중요했습니다.

사촌 동생들이 집에 놀러와서 몇 주씩 있다가 갈 때는 매일이 축제 같았습니다. 저녁마다 과자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게 아주 옛날이라, 마치 남의 전생을 돌아보는 기분이 드네요. 유복하지 않았지만 온기를 잃은 적은 거의 없었던 시절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절이었지만 모두가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때만큼의 치열함이 사라진 대신 약간의 타성이 일상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쪽의 삶이나 이쪽의 삶이나 무엇 하나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삶이 삶이려니 합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