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에 동네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아주 외딴 곳에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산골이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면과 면을 이어주는 중간에 있었지만 거주 단지 집이 3채 있었기 때문에 전기나 수도 등 많은 것들에서 소외된 지역이었을 뿐입니다. 3채 중에서도 1채는 제가 일곱 살 때인가 없어졌기 때문에 두 집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나마 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개통이 되었습니다만 수도는 도로 확장에 집이 편입되어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던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우물은 있었습니다만 여름에는 물이 생겼지만 추수를 즈음에서는 물이 말라버리는 아주 친환경적인 우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1972년에 산골에서 이사를 나왔습니다.) 거주하시던 분들이 답답해서 우물을 파 놓았지만 그저 빗물을 모아놓은 저장고처럼 사용되었었나 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우물은 제법 깊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 우물을 청소하러 제가 우물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제 키에 4배 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좀 더 깊이 파면 물이 나올까 하여 1미터 이상 망치와 정으로 더 파내려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더 파 내려갔는데 결국 우리가 말하는 샘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추수는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을이 되어야 만, 추수를 할 때에만 풍요로움이었으니까요. 일 년에 한 번 느낄 수 있는 그 풍요로움, 여기에 더해 1년 생계가 달려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습니다.

우물이야기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네요.

여름에는 그나마 빗물로 버티던 우물이 추수할 즈음이 되면 마르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마르지 않는다 해도 우물물이 적어지면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물 양이 줄어들면서 심각하게 오염이 되거든요. 근처에 외양간까지 있었는데.. 그 빗물을 마시고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형님들 말대로 조상이 도왔나 봅니다.(발이 아파서 곤란한 것 빼고는 나름 건강합니다.)

우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들판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샘으로 먹을 물을 길러갑니다. 대충 거리가 왕복 800m 정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들판 중간에 있는 우물이었는데 농번기에는 물이 많아 오염이 심해 식음수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도랑(농업용 수로라고 해야 하나?)에 물이 줄어드는 겨울이 되어야만 식음수로 쓸 수 있었습니다. 도랑의 물이 줄어들면서 땅 속에서 솟아나는 물이 그 샘을 채웠기 때문에 식음수로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거기까지 물지게를 지고 가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렸기 때문에 물지게를 진 경우는 많지 않지만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신 경우는 어머니를 따라 중간 중간 져 봤기 때문에(풀코스를 완주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고는 있습니다. 충분히 안다고 는 할 수 없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할 만큼은 알고 있지 않나 합니다. 물지게를 지는 어깨의 고통뿐만 아니라, 걸어오면서 흘리는 물이 몸에라도 떨어지면 그 추위는 무서울 정도로 추웠을 겁니다.

이렇게 물을 들판에 있던 샘물로 먹을 물을 길러 가야 했던 시기가 얼추 1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이듬해 3~4월까지는 물을 길러 다녀야 했습니다. 그 집에 살았던 기간이 14년 가까이 되니 아버지께서는 그 긴 시간, 추웠던 겨울 동안 물이 넘치는 물지게를 지셔야만 했던 그 괴로움을 감당하셨어야 했는데, 또 어머니께서도 그 고통을 나누어야 하셨는데.. 그 고통을 어떻게 다 이겨내셨는지.....

며칠 전 PC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사진을 봤습니다. 아내가 ‘아버님이다’라고 하면서 반가워하더군요.(아내는 제 어머니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남기신 사진도 별로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도 그 사진으로 인해 그 때를 생각하게 되었나 봅니다.

얼마 전 보도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은 필요하다’는 글을 읽었었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알짬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