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얼추 깐 밤을 사도, 속 껍질을 벗겨야 입속에서 이물감 없는 밤 요리를 만들 수 있어서, 며칠 전 냉장고에 있던 밤 한 봉지를 꺼내 열심히 껍질을 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명상적인 행위 중 하나가 밤 껍질 까기인 것 같습니다. 단단한 겉껍질 까는 건 위험해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무른 속껍질 까는 건 무념무상인 상태로 해도 크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칼을 다루는 순간이니 웬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밤을 찜기에  한 번 찐 다음, 꿀에 절이기만 하면 밤 꿀 절임이 완성됩니다. 사실은 밤을 설탕물에 졸여서 밤 조림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원체 손이 많이 가는 터라, 비교적 과정이 간단한 밤 절임으로 노선을 갈아탔습니다.

완성 사진은 없는데 지금은 밤 절임을 다 먹었습니다. 밤 조림과 맛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데 꿀맛이 나니 풍미 면에서는 이것이 한 수 위라고 생각됩니다. 

올해 제가 제일 많이 만든 요리 중 하나가 떡볶이입니다. 이것은 무채로만 수분을 빼서 만든 무채 떡볶이입니다. 

무채를 조청과 설탕에 절여 1시간쯤 두면, 무채에서 자체적으로 수분이 듬뿍 빠져 나오는데요. 오직 그 수분만 이용해 떡볶이를 만들면 별도의 육수 없이도 맛이 근사한 떡볶이가 완성됩니다. 무채를 써는 게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좋아 이것도 서너 번은 해 먹은 것 같습니다.

저는 떡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떡보다는 빵이 좋습니다. 질퍽거리거나 질겅거리는 것보다는 폭신폭신하거나 퍽퍽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떡볶이를 만들긴 해도 잘 먹지는 않는데, 무채 떡볶이는 꽤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반찬 개념으로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조청을 넣고 더 졸여서 떡꼬치처럼 꾸덕꾸덕하게 먹어도 맛있을 것 같네요.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