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연말, 살기가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향해 들고 일어나는 것 같은 때였다.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도리어 큰소리를 내거나 상심한 사람들이 인생의 끄트머리로 스스로를 몰아가던 때. 그 회오리 속에 나도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모자람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내 몫의 일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였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불러 앉히더니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고 지금까지 어떤 울분을 경험했는지. 나는 그가 고민 상담을 청하는 건가 하여,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의 경험담을 듣고 있으니 내 체험의 무게가 경감되는 듯도 하였다. 자기 이야기를 술술 내놓던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빈 씨 속에 불덩이가 있는 게 보여요, 내 눈에는."

그러더니 그의 눈이 그렁해지는 것 아닌가. 그는 울기 시작했다. 나에게 연민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잘 행동한다고 했는데, 내 안의 화염이 그에게는 보였던 모양이다. 눈두덩이가 확 뜨거워지고 목 안쪽에서 화재 경보기가 울리는 듯했다. 그를 따라 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따라 울지 않고 오히려 그를 달래 주었다.

그리고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2시간 내내 울었다. 그에게 고마워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위로가 되는구나, 싶어서.

인생 참 묘하다. 그렇게 눈 붓게 울고 나서 나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나섰다. 그리고 그 당시 나를 휘감고 있던 사슬들 대부분을 나는 끊었다.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픈 내가 보인다며 펑펑 울던 사람이 나에게 아프지 말라고 해 준 것. 내 안의 화염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넣을 때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