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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제주 해안 도로에서

 

 

나는 제주의 해안 도로에서 걷고 있었다. 인도가 하나도 없는 그냥 도로에서. 여행 사흘째 오후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몇 분 전에 만난 갈림길에서 인도가 있는 도로 쪽으로 빠졌어야 했는데(그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는 인도가 있는 도로에서 걸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종의 지름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전날 밥도 거의 안 먹고 초저녁까지 내내 걷기만 했더니, 발 아래쪽이 물집들로 너절해져서 그날의 일정을 고스란히 소화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제주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온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예사 바람이 아니었다. 그 모두가 돌풍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태풍이 불었을 때도 이 정도의 바람이 불었나, 싶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쳤다. 일행과 50m쯤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던 중국인 여행자의 검은색 모자는 하늘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치솟더니 바다로 날아갔고(그때 그가 비명처럼 말한 중국어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모자를 집어삼킨 바다를 내다보면서도 내내 깔깔대만 했다), 내 핸드폰 액정 속에 나란히 앉은 아나운서들은 강풍 주의보 발효 소식을 알렸다. 과연 주의할 만한 바람들이었다.

 

나는 몸을 바다 쪽으로 조금 기울이고 걸어야 했다. 다리에 힘을 주면서. 사실은 다리와 상체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까딱하면 중심을 잃기 십상이라.

 

바람은 바다에서 도로 쪽으로 불었다. 서 있는 내 몸과 직각인 방향으로. 도로로 밀려나지 않고 걸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리 안전한 도보는 아니었다. 나는 일직선으로 걷지 못했다. 내가 한 걸음 내디딜 곳의 풍속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만큼의 공간마다 다른 풍속을 가진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의 종류가 무한하게 존재하는 복잡한 공간 속을 헤치며 걷는 듯하였다. 과언도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체중이 10kg쯤 덜 나갔던 4-5년 전에 내가 이 길을 걸었다면 무사했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그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 허약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체중만이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강이를 밀어젖히는 바람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곳에 발을 놓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사실은 그 모든 게 재미있었다. 정신 나간 소리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내 얼굴은 싱글벙글댔다. 똑바로 걸어야만 살겠으니 똑바로 걷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고, 나는 그 몰입의 순간이 가져다주는 단조로운 기분이 좋았다. 날 흐린 바다에서 두터운 파도처럼 밀려드는 바람에 내 모든 잡념들이 단번에 쓸려가 버리다니. 내 입김만으로는 늘 역부족이었는데.

 

어쩌면,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잡념 더미에 파묻혀 있는 걸 내심 즐겼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념 소굴에서 길 잃고 허둥거리고 있으면 자기 인생을 두고 뭔가 대단한 걸 하는 기분이 문득문득 들었으니까. 물론 잡념 덤불 속에서 간혹 꽤 쓸 만한 것들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혹’의 일일 뿐이었다.

 

한 차선을 거의 가득 차지한 채로 이쪽으로 내달려 오는 화물차가 보일 때, 나는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걸었다.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몸집 큰 차가 내 옆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늘의 테두리 곳곳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있었고, 제주의 바다는 할머니가 금 모으기 운동 전까지 끼고 다니시던 옥 반지 색깔이었다. 탁하면서도 마냥 탁하지는 않은 밝은 초록빛.

 

여행객들을 싣고 다니는 렌트카들이 해안 도로를 끊임없이 지나쳐 갔다(자동차 문이나 차창에 렌트카 회사 로고가 박혀 있어서 그것들이 렌트카라는 걸 알았다). 나는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만 두어 대 세워져 있고 건물 내부에 손님은 하나도 없는,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진회색 카페를 지나친 직후였다. 버려지기 전에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검은색 비닐 봉투가 험하게 찢어진 채로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마음의 체중이 어느 정도쯤 되어야, 여기저기서 불어오는 바람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마음이 제 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마음의 허벅지나 종아리 근육은 어느 정도쯤 부풀려 놓아야, 궂은 날의 미친 폭풍우나 눈보라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이 저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을 때, 마음은 실바람 한 올 없이도 풀썩 주저앉거나 넘어지는데….

 

오래 보관되어 이미 푸석해져 버린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 보았다. 내 마음의 주식은 무엇인가. 내 마음은 밥때를 놓치지 않는 편인가. 굳이 골라 보자면, 내 몸과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건강한가.

 

나는 대답 대신 새로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내놓았다(대답할 말이 궁색하기도 했고, 정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새로 떠오르기도 해서). 이 대단한 바람에 내 몸은 겨우 날려가지 않고 있다마는, 내 마음도 여기에 그대로 있는가. 쉴 틈 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마음이 홀랑 떨어져 나가 버려서 잡념도 없는 거 아닌가. 잡념은 다스려진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잡념은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해결되지 못한 고민은 잠재되어 있을 뿐, 처리된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나 스스로 치열하게 뜯어보고 받아들여 보고 이해해 보지 않은 잡념들이 잠깐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게 마냥 반가운 일인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바닷바람 속으로 또 도망을 온 건가. 꼭 그런 건 아닌데. 고의로 그런 건 아닌데. 이번에는 진짜 아닌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조그만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제주에서 걷는 건 이쯤만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왼발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왼쪽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른발이 성한 것도 아니었지만.

 

공항 근처 숙소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동전 두께만 한 꿈들을 꾸며 졸았다. 버스가 정차할 때 버스에 승차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여행자였다. 여행지에 머물 때마다 현지인과 여행자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쉽게 식별되는 건 왜일까. 여행자에게 그 차이는 조금 민감한 주제여서일까. 내가 현지인인 곳에서 나는 현지인과 여행자를 분별하려 들지 않는다. 그곳은 나의 여행지가 아니기에. 내 여행지에서 나는 여행자이므로, 나와 동등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찾게 된다. 내용이 분명하지 않은 응원이나 격려를 눈빛으로 또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심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현지인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 자체에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어느 정도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여기서 말하는 불안이 나쁜 불안은 아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인 그들을 찾으면, 나는 혼자서 그들을 반긴다. 그들의 여행이 결론적으로는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고요 속에 잘 희석시켜 놓는다. 그것도 여행하는 기쁨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일부러 휩쓸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난파를 당해도 상관없으니, 그 사람이 최대한 힘껏 나에게 불어닥치기를 바란 적이 있다. 좋은 볕이 내리고 파도가 잔잔하여도 항구에 정박해 있기만 하는 내가 답답할 때. 차라리 항구에서 태풍을 맞아 버려라, 하는 자학의 심정이 들었다.

 

억지로 붙이고 꿰매어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핑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니, 차라리 누군가로 인해 앓다 못해 부서져 내리기라도 했으면….

 

하지만 그 모든 순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자발적인 항해를 얼마나 오래도록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게 영원한 정박은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런 걸 원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그 점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스티로폼 박스 하나 겨드랑이에 끼고 헤엄을 쳐서라도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라는 것을. 나에게 사랑은 치밀한 준비 후에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그저 그 시작을 맞아들이고 그 전개를 겪는 일일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의로 사랑을 시작할 수 없다. 사랑은 내 안에서 생겨나거나 생겨나지 않을 뿐이다. 노력으로 사랑을 만들 수는 없다. 나는 그 점을 모르지 않는다. 관계와 사랑은 그런 면에서 극명하게 다르다. 관계는 자발적인 의지로 시작할 수 있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이다.

 

그걸 다 알아도,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마음이 해안에 정박해 수평선이 아닌 해안가 식당들만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번씩. 그러느니 난파라도 당했으면 좋겠네. 한 번이라도 출렁거렸으면 좋겠네.

 

단순히 나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바다로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때마다, 나는 그런 괴상하고 폭력적인 생각을 했다.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혼자 하는 생각인데도 쑥스러워서 그런 괴팍한 생각을 했던 건지.

 

몸이 휩쓸려도 마음이 휩쓸리지 않을 때 사람의 눈동자 속에는 거대한 은빛 닻이 들어 있다. 나는 그 닻을 볼 때마다 그 사람에게 속 깊은 호감을 느낀다. 왜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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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20-01-13 12:39:38 211.252.***.***

    바람앞에서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을 맞아 그 사랑을 만드는 것은 과연 어떤 상황일까요.
    큐피트의 화살을 맞지않아도 다들 사랑하고 살아갑니다.
    한번은 부서져 보고도 싶을 태지요. 그사람앞에서...
    사랑을 위해서 파괴된다 하여도 그것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일 겁니다.
    잘 봤습니다.   삭제

    • 은비솔99(rose3719) 2020-01-13 10:45:08 175.198.***.***

      명절전에 여유로운 휴가를 다녀오셔서 다행이네요. 요즘은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이 더욱 막히는것 같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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