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산 마을에 문짝만 한 집 하나 가졌다

싸리나무 울타리와 이팝나무 갓길이 있고

굽은 산길이 마주 놓여 까치집도 보인다

주소도 희미해진 대문 뒤쪽 집 복사꽃 향기가

다 닳은 잠근 문 열고

벌써 집 안 구석구석 도배를 하고 있다

나는 남쪽으로 시들어가는 안개를 불러들여 족보에 등재하고

저물녘 등본에 남겨진 푸른 핏줄은 

시무룩한 새처럼 묵정밭에 앉아 슬픔을 꺾어낸다

내 익은 통증도 다 찢어져 퍼렇게 말라간다

아직 일정량의 붉은 천둥이 오동잎 크기로 붙어있다

알룩달룩 옷 입은 새끼들은 

마을 뒷동산 귀퉁이에 걸린 저녁을 끌로 다니다

깔깔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느린 장면으로 각각의 이름들을 반갑게 호명해도

소리는 가닿지 못한다

그 소리, 허공으로 뿌리내린 뒤 서릿발이 되어 있다

겨울처럼 미안해진다

나는 층수를 알 수 없는 굽은 산길을 따라 걷는다

다람쥐 사각거리는 두어 평의 그 울음을 덜어낸다

가끔, 어미 딱새가 부식되어버린 기억까지

가내(家內) 내력으로 끌고 들어와서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게 한다

두꺼운 그리움을 덮어가는 것이겠다

버둥거리며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든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랬다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어둠처럼 스며든 방에

환하게 밝히는 소식하나 있다.

내 익은 통증도 다 찢어져  퍼렇게 말라가는

오동잎 크기의 붉은 천둥이 아직은 숨이 고르다

아픔이면 어떠랴

시 한편 나누자는 소식이고나

어디든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고...

바라보기(qkfkqh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