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가 안경을 쓰고 있을 때나 벗고 있을 때나 내 눈을 좋아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내 눈을 보기 위해 나와 만나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한 번씩 들 정도로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겠지만) 당신은 내 눈의 모든 걸 좋아했다. 그냥 좋다고 했다, 당신은. 내 눈이 다짜고짜 좋다고. 처음부터 그랬다고. 내 눈의 물리적인 모양도 물론 마음에 들지만, 정말로 좋은 건 내 눈을 둘러싸고 있는 ‘뭔가’라고.

눈이라는 것에도 분위기가 있으려나.

글쎄, 그럴 수 없단 법 같은 건 없으니까.

포옹을 하다가도 꼭 고개를 뒤로 물려 내 눈을 한참씩이나 바라보던 사람. 왼쪽 눈 한 번 보고, 오른쪽 눈 한 번 보고, 그리고 다시 왼쪽 눈 한 번 보고, 오른쪽 눈 한 번 보고. 내 눈에 처음으로 입 맞추어 준 사람. 내 눈 안에 강과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고 길이 있다던 사람. 가끔은 내 눈 안에 우주가 있다던 사람. 내 눈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낸 사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면 그것의 모양에서 온갖 것들을 연상할 수 있으니, 당신의 말들은 꾸며낸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미화시켜 말한 게 아니라, 실제 관찰의 결과물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신은 정말로 내 눈 속에서 그것들을 보았는지도 모르니까. 당신 외에 누가 알겠는가. 그것은 당신만이 볼 수 있는 건데.

육체의 눈은 마음의 눈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의 시야 안에서 현실은 초현실과 공존하니, 상대가 어딘가에서 뭘 봤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건 상대의 눈에도 안 보일 거라고 믿는 것은 대단한 실수다. 착각이고. 저기 저 가로등 밑에 누군가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서 있다는 말이 어떻게 거짓이겠는가.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데, 나는 당신에게 “그런 게 내 눈 안에 어떻게 있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 눈 안에 뭐가 있다고 말할 때마다, 당신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게 결코 농담일 수 없다는 것쯤은 유치원에서 막 뛰어 나온 아이도 알았으리라.

내 눈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당신은 순수한 기쁨을 폭발적으로 발산하였고, 나는 당신이 울적해질 때면 내 눈을 떼어다가 당신에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하였다. 잔인하면서도 다정한 그 상상은 보다 현실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당신이 울고 싶다고 한 날의 밤마다, 나는 당신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대문을 등지고 서 있으면, 당신은 퉁퉁 부은 눈을 손등으로 비비적거리며 대문 밖으로 나와 나를 돌려세우고는 내 허리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그러려고 나온 사람처럼, 불필요한 모든 동작들을 생략하고. “눈 보여 주러 왔어. 빨리 봐.” 하고 내가 말하면, 당신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고갤 저었다.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슬픔을 내 눈 안에 넣으면, 그것이 그 망망대해 또는 그 광활한 우주에서 금세 사라져 버릴 텐데. 그런 생각들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당신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날에 당신은 내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오래 포개고 있었다. 비물질인 무언가를 공급받는 사람처럼(나는 입맞춤에도 다양한 종류와 목적이 있음을 당신에게서 배웠다).

가끔은 당신을 내 눈 안에 숨겨 놓고 싶었다. 무언가가 수백 개의 칼날을 앞세우고 당신에게로 다가들 때마다. 사나흘쯤 당신을 내 눈 안에 넣고 다니면, 그 위험한 소란이 다 지나가지 않을까, 했다. 별 탈 없이.

사나흘쯤 당신이 내 눈 안에서 산다 해도 나에게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만화적인 생각은 나를 웃게 하기도 하고 울적하게 하기도 했다. 울적함이 더 클 때가 많았다. 당신을 정말 내 눈 안에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걸 당신이 원하지도 않을 테니까. 여건이 어떻고 자기 능력이 어떻고 당장 쓸 수 있는 자원이 어떻든,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릴 테니, 당신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최대한 성실히 해결하려 할 것이다. 아무리 고단하여도. 스스로.

삶의 난관은 언제나 그 자신만이 지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때 그 주변인들은 속수무책이다. 시시껄렁한 위로나 응원만 해 줄 수 있을 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당신의 시련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을까 봐, 나는 초조했다. 당신의 고난으로 인해 더 많이 흔들리는 것이 나라는 사실로, 당신은 자주 웃었다. 때로는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갈 듯이 웃었다. 그렇게라도 당신이 웃으니 다행이었다.

내가 10대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에게 유일하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그것은 멋부리려 안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다른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실수를 많이 할수록 사람이 여물어지니까).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시력은 조금 나빠졌는데, 그게 당장 안경을 써야 하는 정도의 시력은 아니었다. 칠판 글씨가 좀 퍼져 보이는 정도. 그때 내가 고집 부려 안경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시력을 계속 유지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전에 내 시력이 양쪽 2.0이었으니까(시력이 좋은 편이었다), 거기서 시력 좀 떨어진다 해도 나는 남들만큼은 보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웬만하면 안경 쓰지 마. 너 고생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안경 쓴 아이들이 괜히 멋져 보여서, 나는 결국 어머니를 졸라 안경을 맞추었다. TV 화면에 눈알을 붙이고 있었던 적도 있다. 안경사 선생님이 “얘는 안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며 나를 돌려보낼까 봐.

아무튼 그때 내가 안경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내 시력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시력 점검을 하러 안경점에 갈 때마다, 안경사 선생님들이 “시력이 떨어졌네요.”라며 도수를 더 높인 안경을 착용하길 권했기 때문이다. 정말 내 시력이 계속 떨어져서 내가 자주 안경을 바꾸어야 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안경사 선생님들의 상술에 순진하게 넘어간 건지, 모른다. 이제 와 사실 확인이 뭐 중요하겠는지. 나는 지금 안경을 벗으면 코앞의 책도 읽지 못한다. 지독한 근시 때문에.

그래서 안경을 벗고 누군가를 바라볼 때 내 눈의 초점은 풀려 있다.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에 따라 내 눈동자의 흐리멍덩함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내 눈도 좋아했다. 초점 잡히지 않아 흐리멍덩한 눈. 아무나 볼 수 없는 눈이라고 하면서(내 경우, 안경을 벗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침대에서 마주 보고 누워 있을 때 당신은 문득문득 “내 눈 잘 안 보여?” 하고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안 보여. 얼굴 윤곽만 대충….” 하고 대답하거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방에서 당신과 마주 누워 있어도, 나는 당신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없었다. 한 번은 당신이 “그럼 내 얼굴 잡티 같은 것도 하나도 못 보겠네.”라며 킥킥거렸는데, 내가 당신 코끝에 내 코를 대며 “이렇게 하면 보이는데.”라고 하자 “뽀뽀하러 왔으면서, 핑계는.” 하고 웃었다. 뽀뽀를 먼저 한 건 당신이었다.

“이런 얘기 들으면 눈 나쁜 사람 입장에선 황당하겠지만, 좀 부럽네. 안경 벗으면 세상이 모자이크 처리되잖아. 안 보고 싶은 건 못 알아볼 수 있다니, 좀 부러워서. 산책 나가면 한 번씩 안경 벗고 걷는다며, 당신. 그러면 혼자 있는 기분 드니까.”

언젠가 당신이 그런 말을 했다.

“부러워하지 마. 별게 다 부럽대. 보고 싶은 거 선명하게 못 볼 때마다 난 얼마나 애통한데. 바닷가에서, 산 정상에서, 보고 싶은 풍경 보고 싶은 만큼 볼 수가 없는 게…. 먼 데서 마주칠 때마다, 매번 당신이 나 먼저 알아보는 게…. 여기서 당신이 한 걸음만 물러서고 내가 맨 눈이면, 나는 당신이 당신인 줄도 몰라. 이게 얼마나, 나는…. 그러니까 부러워하지 마. 나는 그래. 봐서 괴로운 것보다 못 봐서 괴로운 게 더 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겠지만. 그렇다고 수술은 하지 말라며, 당신이.”

“응. 하지 마. 위험하대. 하지 마. 근데 나 못 보면 애통해?”

“그뿐이겠어? 눈 뜨고도 당신 못 찾는다고 생각하면, 한 번씩 소름끼쳐. 그 처절함이 슬픔 안에 다 들어갈까. 넘칠걸. 철철…. 보고 싶어. 보고 싶은 사람은 보면서 살고 싶어. 가능하면 또렷하게. 그래서 당신이 내 눈 보겠다고 이쪽으로 얼굴 들이밀면, 나는 반갑게 당신 얼굴 봐. 좋아. 시야가 너무 좁지, 나는.”

“그래서 아무나 못 들어가고, 사실은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잖아. 딱 한 명만. 그 안에. 그 한 명이 나라서 나는 좋은데. 수술은 안 돼. 진짜 안전한 수술 나올 때까지, 안 돼. 내가 빨리 당신한테 가면, 당신이 나 못 찾아서 쩔쩔매는 일 없을 거 아니야. 내가 재빨라지면 될 일이야. 나 얼마나 부지런해?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슬퍼할 일 아니야. 별게 다 슬프대. 나는 밥 먹듯이 슬프다고 하고 그 말할 때 내 마음 그럭저럭 괜찮은데, 당신이 슬프다고 하면 내 마음이 이상해. 사실 이게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니야. 옷 다 입고 있는 채로 길에서 걷다가 찬물 뒤집어쓴 기분이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당신 내가 찾으면 되지. 내가 찾아, 걱정 마. 나 눈 좋잖아. 이러려고 우리 만난 거야. 대충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사는 거야. 그럼 운명이야. 별게 운명이야?”

그렇게 말한 당신이 내 안경을 벗겨 가서는 그것을 오래 닦았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