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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거만함에 대처하는 일

 

 

다른 모든 태도들처럼, 거만함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잘난 척하며 누군가를 업신여기는 거만함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염려해 주는 제스처를 다채롭게 취하면서 그를 은근히 깔아뭉개는 거만함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난 후로 나는, 후자의 거만함을 전자의 거만함보다 더욱 자주 보았습니다. 중심 메시지가 불분명한 조롱과 무시를 치밀하게 구사해야만 시비 걸리는 일 없이 사회생활을 근근이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일까요(그렇게 꾸린 사회생활이 마냥 원만하진 않겠지만. 물밑에 적을 둔 생활이겠기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포장재로 감싸 놓은 거만함을 선물로 받은 영리한 누군가는 그 선물의 내용물을 알아차리고 벌컥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돼 버릴 때, 그 선물의 제공자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라고 우물거릴 수 있어요. 그에게는 빠져 나갈 구멍이 있는 것입니다. ‘선량한 의도’라는 포장은 포장인 동시에 탈출구입니다.

선물 제공자가 상처받았단 표정으로 눈물 한 방울 떨구면, 그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남들만큼 교묘해져야 남들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문장을 흘려들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나는 인간관계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관계는, 유감이지만, 낙원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조심해서 나쁠 거 없죠. 이런 건 순수함이나 정직함과도 별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방탄복이나 방패 하나 없이 사람들을 만나야만 우리가 순수하고 정직한 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이제는 아니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얼마 전, 당신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타인의 거만함에 대처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당신은 가지고 있냐고. 그것은 공교로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날 내 어머니가 그런 일을 당하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거만함에 관련된 일을요.

좀 자세히 말하자면, 어머니는 무명작가 자식을 두었다는 사실로 지인 무리에서 ‘고상한 무시’를 당하고 오셨습니다. “난 괜찮은데…. 내 새끼 얼마나 열심히 잘 사는데….”라며 내 팔뚝을 아기 몸처럼 다독거린 어머니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얼마나 진솔한 해명을 했는지 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어머니는 웃고 있었지만, 속상해하는 기색이 어머니 얼굴에 역력하였습니다. 어머니 눈매 윗부분이 표 나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것만큼 굳어지는 내 마음이었습니다.

송구함과 감사함이 내 안에서 격렬한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몸도 없는 그것들이 핏방울과 살점을 튀기는 듯하였습니다. 결국 그 둘 모두 내 안에 커다란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시험을 망치고 자살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속이 어지간히 시끄러웠던 모양이에요. 내 내면의 소요가 아주 진정되기까지는 사흘쯤 걸렸습니다.

 

다른 나라 사정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걱정은 고급 애정 표현의 일환입니다. 선량한 의도라는 포장재들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게 걱정이라고 난 생각해요. 걱정해서 그랬다고 털어놓으면, 사람이 웬만한 것들은 손쉽게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날 내 어머니에게 고상한 무시를 구사한 사람은, 어머니를 상당히 심려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불쾌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염려한다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심통 부릴 수는 없으니), 안 해도 될 해명을 팥죽땀이 나도록 하신 거예요. 당신이 얼마나 괜찮은지 힘들여 말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 말을 진심으로 믿어 준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요.

왜 어머니는 자신의 ‘괜찮음’을 그토록 열심히 선전해야 했을까요. 어머니 지인 분이 어머니에게, 당신이 얼마나 안 괜찮은지(이건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겠고)를 아프도록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우아한 경멸이죠. 타인의 속내까지 본인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겠고.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마주한 것이 걱정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 믿음에 딸린 석연찮음을 어쩌지 못해서 나를 붙들고 그날 이야기를 하신 거구요.

 

타인의 거만함에 대처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나는 가지고 있냐구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하는 멸시들에까지 내가 일일이 대응하진 못하거든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걱정이 아닌 걱정을 파악하려고 자꾸 깨어 있는 일입니다. 그걸 파악하면 그 상황에서 얼른 퇴장하구요.

나는 걱정 아닌 걱정과 다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 모든 것들에 맞섰어요. 그것들은 매번 내 내면을 엉망으로 망가뜨려 놓았고, 나는 그 매번의 경우마다 걷잡을 수 없이 노여워했습니다. 악마보다 위선자가 더 싫더라구요.

그렇게 주기적으로 눈 까뒤집으며 지내고 있는데, 누가 나한테 그러더라구요. “남 푸대접하는 사람들이 제일 원하는 게, 뭔 줄 알아? 푸대접당하는 그 사람 괴로워하는 거…. 즐긴다니까, 그 사람들은. 남 아파하는 거 즐겨. 그러니까 넌 아프지 말어. 왜 남 좋은 일을 사서 해.”

그 말을 듣고 내 정신이 번쩍 든 것까지는 아니지만…. 내 정신의 갈피가 좀 잡히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우아한 공격을 굳이 상처로 만들어 내가 나를 고단하게 만드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굳이 무기로 만들어 내가 나를 찌를 필요 없다는 사실을요.

누군가의 태도와 말 같은 건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니, 내가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나에게 닿지 못하도록.

그때부터 나는 고요한 무시를 연습했습니다. 걱정 아닌 걱정,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은 교만함을 조용히 무시하는 연습. 머릿속은 분노 때문에 터져 나갈 거 같은데 겉으로만 적막을 연출하는 게 아니라, 안팎이 골고루 적막해지도록….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난한 연습 기간이 무색해지도록 만드는 엄청난 순간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는 그 연습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요.

 

실망스러운 대답일까요. 이 문제에서 나는 아직도 헤맵니다. 아직도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구요. 그래서 당신처럼 나도 문득문득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문제에서 얼마나 놓여나 있느냐고. 그러면서 공유해요. 각자가 각자의 노력으로 마련한 각종 전략들을.

 

순수는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한심한 것도 아니고. 사실 소중한 거죠. 진짜 아름다운 거고. 그런데 순수는 아무래도 다치기가 너무 쉬우니까…. 나는 순수를 지키기 위해, 순수와 반대로 걷곤 합니다. 순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순수를 사냥감 삼는 세계의 교묘한 무기들과 전략들을 공부합니다. 피해야 할 건 피하면서 살려구요.

그러면서 균형 잡는 연습도 병행합니다. 순수가 부재하는 세계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사람 안에 있는 순수를 더는 믿지 않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자꾸 생각하려고 해요.

이것이 오늘날 내 최선입니다.

 

이제 나는 사람의 표면을 쉽게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면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믿고 말고 하는 것을 나중의 일로 둘 뿐입니다. 뭐든 빨리 믿어 줘야 많이 사랑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을 버렸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본인 마음의 가장 연약한 부위를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일입니다. 심장의 속살을 준다고 할까…. 믿어서 생기는 상처가 제일 아파요, 난. 그래서 믿는 건 천천히 하고 파악은 오래 합니다.

 

내 마음이 무언가를 미심쩍어할 때, 나는 사건의 표면이 아니라 나의 이면을 봅니다. 여러 번 생각해 보면 그 속뜻이 제법 분명해지는 말들이 많습니다.

이상하게 무거운 솜사탕 안에 칼이 들어 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 때, 나는 서둘러 그 놀이공원을 빠져 나갑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에게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지겨울 만큼 배웠습니다.

솜사탕 안에 칼 넣어 놓는 걸 재미 삼고 사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두고, 나는 내 재미를 찾으러 갑니다. 괜히 그 칼에 찔려 피 철철 쏟으면서 누군가의 흥밋거리가 되지 않구요.

 

위도 아래도 없는 세계에서 눈높이 맞는 마음들을 만나는 게 난 좋아요. 내가 아래인 게 싫다고 위인 게 좋은 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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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20-02-11 23:49:44

    솜사탕안에 숨겨진 칼, 그 칼날이 나에게 와 있다면 그것은 찬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피할 수 없는 칼날 이잖아요. 솜사탕은 피할 수 없는 유혹? 이거든요.
    물론 자처한 유혹은 아니겠지만요.
    언젠가 내가 되돌려 주마!! 이런건 답이 아닌것 같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것이 하나 일 것입니다.
    다음은 즐길 수 있으면 되지요.
    웃어 넘긴다는 말을 합니다.
    웃어야지요.ㅎㅎㅎ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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