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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동 생활에 관하여

 

 

어제 당신은 모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고 ‘그 이야기’를 했다. 아름다운 공동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어째서 당신이 그 이야기를 다시 입에 올리게 된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거기에 대한 언급은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비난하는 듯한 뉘앙스로 그 이야기의 문을 여닫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신 마음을 밀치는 어떤 일이 있었으니 당신이 그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러니까 공동 생활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드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목격했으니, 당신이 한겨울에 낯을 붉혀 가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을 텐데. 당신은 아무것도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다만 ‘사람들 사이에서 웬만하면 지켜졌으면 하는 것들’에 관해 거듭 강조할 뿐이었다.

이제는 내게 익숙해진 당신의 주장을 새삼스럽게 새겨들으며, 나는 테이블 위에서 빨대가 말라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수분이 증발되는 것처럼, 공동 생활에 대한 협의 같은 것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이따금 증발되곤 하였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무언가를 지키지만 누군가는 무언가를 더는 지키지 않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곤 하였다. 모습은 그대로지만 기울기가 생긴 공동체.

당신은 하늘이 세 쪽, 네 쪽으로 갈라지거나 아예 무너져 버려도, 당신의 원칙을 지키는 쪽이다. 그러니 여러 사람들과 생활하는 일이 당신에겐 자주 속이 타는 일이지 않았을까. 함부로 무시해도 되는 문제가 아닌 것들이 함부로 무시될 때마다, 당신 눈 안에서 허물어지는 신념과 기대를 나는 종종 보았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과 기대였으리라. 그것들이 무너질 때마다 사람은 얼마나 허망해지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눈 안쪽이 폐허가 되어 나에게로 온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지. 난 그저 당신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당신에게 새로운 차 한 잔을 내주며, 의자 위에 앉은 의자처럼 단단히 있을 뿐이다. 나도 얼마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며 내가 문득 달아오르는 것은 당신에게 공감이 아니라 실망을 불러일으킬 듯하여. ‘역시, 믿을 만한 게 어디에도 없구나….’, ‘세상은 늘 이 모양인데, 나만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따위의 체념을 아프게 일으킬 듯하여. 나는 다만 당신의 벽, 당신의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될 뿐이다. 인간에 대한 최후의 믿음을 당신이 잃지 않았으면 하여. 나 또한 그것을 잃지 않았으면 하여. 당신은 나를 붙들고, 나는 당신을 붙들며, 그 어려운 시간을 어렵사리 헤쳐 나간다.

 

당신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아름다운 공동 생활에 대한 내 나름의 믿음과 기대를 품고 있다. 당신만큼은 결코 아니겠지만, 나도 내 눈 안에서 여러 번의 붕괴 사고를 맞아 보았다. 그러니 감히 말해 보건대, 나는 당신의 속상함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말해 보건대….

 

한쪽이 책임을 포기할 때, 다른 한쪽이 그 포기된 책임을 수용한다면, 그 공동체는 이전처럼 무사히 존재할 수 있다. 깨지지 않고.

공동체라는 틀 자체는 깨지지 않지만, 그 안의 개인이 깨져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경우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가. 당신이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가 ‘나는 늙었으니까.’, ‘나는 어리니까.’, ‘나는 부모니까.’, ‘나는 자식이니까.’, ‘나는 윗사람이니까.’, ‘나는 신참이니까.’, ‘나는 남자니까.’, ‘나는 여자니까.’ 따위의 명분을 앞세워 자신의 책임을 버림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가 더 큰 책임을 지게 되는 것. 그런 일이 반복되어 온갖 책임들을 떠안게 된 사람이 결국에는 그 압박에 못 이겨 터져 버리는 것. 그것은 이름만 공동 생활일 뿐 실제로는 비린내 나는 학살이라며, 당신은 종종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당신에게서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사회적 살인.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서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당신의 가족이고, 당신은 그 사실 앞에서 문득문득 비틀거렸다.

누군가와 가족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공부이며 도전인지에 관해 당신이 열변을 토할 때마다, 내 목울대에 불이 붙었다. 옮겨 붙은 불이었다. 아니, 그것은 내가 옮겨 붙인 불이었다. 당신의 말은 내 말이었다. 당신의 토로와 내 토로는 연결되어 있었다. 한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당신이 당신의 가족에 대해 말할 때마다, 당신은 고개를 제대로 들고 있지 못했다.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지켜져야 마음을 놓는 내가 내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임을 모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내 가족들에게 난 그저 미치광이 교도관일 뿐이라고 하면서.

나는 당신에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게 아닐 터였다. 도리를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도리를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고문기일 뿐이겠기에.

자기 가족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당신을 앞에 두고, 나는 자주 눈 둘 곳을 몰랐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 길을 찾는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 주면 좋겠는지. 목적지 후보에 오른 그 모든 길은 내 길이 아니고, 나는 어디에 서도 당신의 행복을 볼 수 없는 사람인데.

무엇이 당신을 최선의 행복(또는 차악의 행복)으로 데려다 줄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가나 후회가 따를 것이다. 뒤끝도 뒤탈도 없는 선택 같은 건 인간사에 없겠다마는…. 대가 없는 선택이 없기에, 나는 당신의 선택 앞에서 온건한 침묵을 유지할 뿐이다. 당신의 최선에 가장 해박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원치 않아도 우리는 타협을 해야만 새로운 한 발짝을 뗄 수 있다. 사람이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고 어딘가로 갈 수는 없다. 그리하여 인생은 모든 순간 수행이다. (값지지만) 고행이거나.

 

양보 받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내가 한 양보들을 떠올려 본다. 준 것이 받은 것보다 적을 때 생기는 부끄러움이 자꾸 분명해지고 커져야만, 내가 사람들 속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수 있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올바른 걸 추구하는 사람도 사람이라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이상은 흠 하나 없을 수 있겠으나, 삶에 흠이 없기는 힘들겠다. 그 어디에서도 삶은 삶이다. 그러니 삶과 삶이 만날 때는 항상 자세를 낮출 일이다. 더 낫고 더 못함을 가리는 것이 무용한 일임을 생각하며.

 

공동 생활 안에서,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은 없고, 아무것도 받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그게 공평한 주고받기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웬만큼은 지켜져야 좋을 사항들에 대해, 구성원들끼리 주기적인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너무 오래 묵은 불만은 무지막지한 분노가 되어, 전달되어야 하는 메시지까지 모두 태워 버리고 다만 불덩이가 될 뿐이라. 개선이 아니라 파멸 쪽으로 공동체가 치닫게 된다. 누군가가 너무 화가 나 버리면.

 

어쨌거나 함께 사는 인생이다.

혼자라는 건 환각이다.

부지런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조금 더 애쓰자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싶다.

할 말을 제때 하고 문제를 제때 풀어

불만이 아니라 이해와 신뢰를 키우며.

 

그런데 반드시 봐야 하는 사람(또는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괜찮겠지….’라는 마인드를 일관하는 사람과 굳이 관계 유지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나에게 어김없이 해이한 사람에게 쏟을 에너지를 기다리는 근사한 곳들이 너무 많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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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이든(widely08)VIPVIP 2020-02-29 18:34:19 110.46.***.***

    공동체라는 틀을 깨지 않으려고 혼자가 아니라 같이 나아가기 위해 그 안에서 깨지고 상처받고 흔들립니다.누군가의 포기는 또 누군가의 책임을 무겁게 하고 가족으로 의 결합이 어찌 다 행복하다 하겠습니까? 하지만 깨지는 게 두려워 죽을 힘을 다해 수용하려고 하죠. 오랫만에 다빈님 글 읽으니 좋습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VIPVIP 2020-02-23 22:18:01 211.252.***.***

      공동생활을 위한 주체가 누구일까요. 공동이라는 개념에서 벌써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군요.
      이해와 희생 그리고 봉사의 개념이 공존하는 공동생활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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