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한 날입니다.

  산 쪽에서는 바람이 나무 가지를 흔들며 일으키는 소리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도로 주변에는 일찍 피는 꽃들이 앙상한 가지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습니다.

   연못가의 노란 산수유 꽃, 물, 하늘, 구름이 파스텔 톤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산수유를 보니 김훈 선생님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퍼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길가 나무 아래 낙옆 사이로 민들레와 꽃까치 꽃도 존재를 드러냅니다.

   위 쪽에서는 봄 꽃을 피우는 나무가 화려하지만 바닥에도 그에 못지 않은

   비교할 수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꽃들이 있습니다.

   저 꽃들은 아래쪽을 잘 살펴야 눈에 띄는 꽃입니다.

   산수유, 매화, 목련이 시선을 끌때 바닥에선 민들레도 꽃까치 풀도

   봄의 시간에 맞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모여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에 잘 띄지 않지만 모든 존재의 자리가 있는 듯 합니다.

   목련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오리가 작지만 며칠 후면 하얀 등불처럼 탐스러워지겠지요.

   이럴 때면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그사람' 을 흥얼거리며

   아련한 추억의 한 자락이 피어오르는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목련은 어찌보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절정에 이르기 전 자존심 가득하고 꽂꽂한 지금의 저 모습이 ... 

ju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