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도록 벼르고 또 몇 번은

자신 없어 단념까지 해 가며

나는 어떤 마음의 뚜껑 열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뚜껑에 손을 댄 사람은 나였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거기에 손댄 사람은

나 하나였다

누가 내 마음에 손을 댈 수 있겠는가

누가

어떤 마음은 너무 쓰고 싶은데도 어쩐지

쓰면 안 될 것 같아

가슴속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게만 된다

어차피 아무도 못 보는 가슴속

마음을 포장할 필요도 없다마는

나는 그 마음을 나는 두꺼운 박스 구석에 밀어넣고

그 위로 뚜껑까지 매매 닫아 놓았다

길다는 말마저 낡을 정도로 긴 세월이 지나고

나는 어떤 뚜껑을 열어 보기로 결심하였다

모든 뚜껑을 열 수는 없었고

모든 뚜껑을 열고 싶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간절히 열고 싶은 뚜껑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안에 든 것은 내가 그 안에 집어넣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마음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은 물리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기한 보존 가능한 것인 줄 알았는데

뼈도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져 버리거나

완벽하게 다른 무언가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

마음이었다니 나는 먼지 한 톨 남지 않은

박스 안을 맨손으로 어루만지다 그만

내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뚜껑들을 뒤엎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기한

기한

그 두 글자를 끝없이 되뇌는 메아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도 하였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