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가

프레이저

음울한 바람 속, 남빛 하늘의

또렷한 슬픔 밑에 쇠잔해 가는 여름빛,

우리들은 강가를 거닌다, 낙엽 지는 가지 밑을,

차거이 물 속에, 냉랭한 빛의 그물이 눕는다.

언제나 하늘은 무슨 빛으로도 멈추지 못할 비애의 피를 흘린다.

눈빛 마른 잎이 휘날리는 가을 저녁엔.

언제나 마음은 불안하고, 불안에 차 있다.

언제나 마음은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까닭을 모른다.

잎의 온갖 녹과 빛은 부식하고 있다,

저녁의 무쇠, 하늘의 포금 빛 푸르름을.

언제나 강은 비애를 중얼거리며 있다,

잎과 빛처럼 욕정의 충동은 숨진다.

내일에 만나고, 또 지속할 약속은 이젠 없다.

머뭇거리는 한숨과 함께, 이별을 연기하는 일도 없다.

지금 순환해 가는 크나큰 해가 출발을 고한다.

내 입술에 겹쳐지는 당신의 굳은 입술, 안녕히, 안녕히.

여름은 기회를 되찾는다, 허나 모험은 없다.

언제나 마음은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까닭을 모른다.

음울한 바람 속, 쇠잔해 가는 여름빛,

차거이 물 속에, 냉랭한 빛의 그물이 눕는다.

프레이저 : 모든 그룹의 정치적 성향에 반발하고 나선 「신묵시파」의 일원으로

기계문명에 반대하고 신화와 상상력의 자유를 주장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시인이다.

그의 시는 켈트적인 서정이 바탕으로 된 섬세하고 아름다운 애조의 시가

대부분이다.

「비가」는 늦여름 저녁에 느끼는 까닭없는 애상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시 전체가 갖는 이같은 애조는 그 표현의 참신함이나 시어의 새로움에

의해보다 효과적으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