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든 가장 핵심적인 주체는 가정이다.
그리고 그 가정의 기둥은 부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 주체요 기둥인 부부간의 호칭이 국적을 잃었는가 하면, 천박하기가 그지없다.

용어란 현상을 정의하여 이름붙인 것이다.
그 용어가 갖는 중요성은 사람들이 용어를 통해 직관적으로 개념을 파악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어를 ‘일정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말’로 풀이하기도 한다.
하물며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 있어서랴!

“달링, 허니”가 들리는데, 미군정 하에서 생겨났겠지.
피점령국 국민의 처지에서 점령국 국민들이 쓰는 용어는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였을 게다.
그러다 보니 “서구사회에서도 천박하다고 쓰레기 취급받는 깡통문화까지도 범람하게 된 지경”일진대, 그런 시대적 흐름의 단편이라고 봐줄 수도 있기는 하겠다.
허나, ‘한류’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는 이즘에도 저런 호칭을 쓰고 있는 부류는, ‘천민 자본주의의 탕아’ 쯤으로 손가락질 받아도 싸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자기(야)”도 들린다.
그 귀한 청자-백자를 따다 쓰는 ‘자기’라면 인정 못할 바도 아니다.
얼마나 소중한 남편, 아내이기에 귀한 도자기를 빌어다 쓸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self 의미의 “자기야”이지 싶은데, 이거야말로 ‘개똥철학’도 아니고, 나 원 참.

“영희 아버지, 철수 어머니”도 들린다.
그러면, 애 낳기 전까지는 입 다물고 살았다는 얘기인가?
아내에 대한 호칭으로 “마누라”도 들리는데, 어원이나 함축의미가 분명치 않다.

제일 흔히 들리는 게 “여보, 당신”이다.
그런데 이거는 한번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보시오, 당신 말이야”는 주로 시비걸 때 나오는 표현 아니던가?

우리에게는 사대부 집안에서 쓰던 격조 있는 전래의 호칭이 있다.
사랑이 듬뿍 담긴,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경까지 담은, “서방님, 부인”이라는 호칭 말이다.
그처럼 격조 있는 반가의 호칭을 두고 왜 서양애들 호칭을 주워다 쓰는 것일까?
왜 천박한 상것들 호칭을 써가며 추락을 자초하는 것일까?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면 결코 따를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사회현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