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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가 가까이 가자 인기척을 느낀 양설란이 뒤돌아 보았고,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 눕겠소. 자신의 상태도 고려하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뭘 그렇게 고민하니?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넌 고민하지 않아도 돼.) ”

“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그래 이제 고민은 다 끝난 것이오? ”

양설란이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 쉽지가 않네요(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널 유혹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니 쉽지 않네). ”

“ 이미 양극초는 구해 놓았소만, 소저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 대상을 정하지는 않았소. ”

그의 말에 양설란은 얼굴을 붉혔다.

“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안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겨우 한 번의 인연을 평생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

냉정한 상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므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양설란의 입장에서는 아주 야속한 말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물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 양설란! 이 정도의 말에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된다. 그의 말이 맞다. 감정낭비다. ’

짧은 시간내에 겨우 감정을 다스린 양설란이 말하였다.

“ 그런 면도 있군요. 장단주님께서는 그런 경험이 많으신가 보죠?(남자하고 여자하고 같니? 이 개자식아.) ”

자신도 모르게 뒷말은 감정이 스며 들어 있었다.

그녀는 아직 장진호를 상대할만큼의 연륜이 없었다.

“ 세상을 돌아 다니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하죠(넌 아직 경험이 미천해). 그런 것에 연연하다가는 일을 하기 힘들죠. ”

“ … ”

그의 말에 양설란은 더 이상 뭐라고 하기가 어려웠고, 입술을 꽉 물고 바다만 쳐다 보았다.

그런 그녀를 힐긋 보고는 장진호가 말하였다.

“ 상가의 여식이 아닌 다른 여인이었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내 판단이 맞다면, 아마 다른 남자하고 연을 만들지 않을 생각인 것 같소만, 상가의 여식이 상거래를 하다 보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오. 그럴 때마다 이렇게 고민할 생각이오? ”

화가 나긴 하였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상계의 일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저분한 일이 많았다.

권력에 버금가는 전력(錢力)이 걸린 일이다보니 조정의 권력투쟁에 버금가는 일들이 많은 편이었다.

결혼을 이용하는 것은 보통이었고, 미인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때문에 상가의 여식 중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증조부인 양천우는 달랐다.

그의 의지에 따라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원하는 상대 혹은 양천우가 정해 주는 사람과 혼인을 하였다.

양천우가 정해 주는 경우도 상계에서 일어나는 그런 결혼과는 달랐다.

좋은 사람을 단순히 소개해 주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천붕상단의 경우에 이미 상당한 전력(錢力)을 가지고 있어 다른 곳에서 함부로 하기 힘들었고, 양천우가 권력욕이 없다보니 조정과의 관계에서 혼인을 이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의사와 달리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었지만, 며느리를 받아 들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증조부도 이왕이면 그녀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최대한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병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는 천붕상단을 먼저 생각해 왔었다.

그녀가 나름대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였는지, 말을 마친 장진호는 그 자리를 비켜 주었다.

‘ 저 사람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장진호와 이야기를 나눠 본 양설란의 생각이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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